성악가 테너 신형섭 씨(43세/속초)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이지만 문화예술인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물론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해 갈 수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아 노래를 시작했다. 많은 고심 끝에 강릉대 음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유럽에서 콩쿨에 나갔으나 예선에서 떨어지고 학교 입시에도 실패하는 등 좌절을 겪었지만, 베르가모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콩쿨도 수상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유학 중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왼쪽 신경이 마비돼 몸의 반쪽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3급의 뇌병변장애인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휠체어는 타게 됐지만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성악가인 자신에게 있어서 노래는 가장 자신 있는 것이자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이탈리아에서의 병원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습에 매진했다.
삶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든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편하지만 살아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무엇보다 노래를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평범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주변의 시선도 두렵고, 힘들고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살아있음에 감사를 느끼고 싶다. 삶의 매 순간을 극복해나가야 한다.”며 신형섭 씨는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몸이 불편하면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불쌍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줄 것이 아니라 조금 기다려주면 장애인들도 분명히 해낼 수 있다고.
이세미(I Semi) 앙상블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신형섭 씨는 지난해 툴뮤직 주최 제4회 장애인 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피아노재능기부협회 주최 제4회 전국 장애인 음악콩쿨에서도 1위의 영예를 안는 등 꿈이었던 음악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의 표상처럼 묵묵히 삶의 시련을 극복 중인 신형섭 씨와 그의 음악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