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 작품 - 최우수상
휠체어 타는 기부천사 / 이병길(홍천군지체장애인협회)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1-28 10:21:07

강원도장애인단체연합회가 주최한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입상 7편을 순위대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병길(홍천군지체장애인협회)

 

추운 바람이 불지만 홍천의 볕은 여전히 따사롭다. 나의 따뜻한 온기가 구석구석 닿아있기 때문일까? 나는 홍천에서 알려진 휠체어 타는 기부천사이다. 태어날 때부터 혈액이 응고되지 못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인 혈우병 중증A와 소아마비 중복장애를 가진 지체장애로 나는 강원도 홍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가진 지체장애와 함께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아 제대로 걷기조차 못하고 이유도 없이 매일 몸이 아픈 관계로 학교는 어머니의 등을 빌려 공부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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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되어서야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내가 앓고 있는 병이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이란 걸 알았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은 난치병이다. 일상생활 중 입은 타박이나 작은 상처조차도 지혈이 되지 않는다. 반복된 출혈로 관절기능에도 이상이 생겼다. 1970년 초까지 환자 대부분이 30세가 되기 전에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숨졌다. 진단을 받은 나는 이후 방황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 먹었던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기엔 매우 아까운 젊은 나이 언제 몸 어디에서 핏줄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질병을 떠안고 살아가는 건 괴롭기만 했다.


관절은 계속 굳어가고 병세는 악화돼
40세가 못되어 세상과 이별할 것이라 여겼다. 좌절하지 않은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매번 굳건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달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게 아파 본적이 있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있어 아프다는 것은 익숙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모든 장애인 가족에게 아픔과 고통을 일반화하진 않겠다. 그랬던 나에게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강원도에는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
. 흔한 질환은 아니니까. 19966개월간 입원치료에 치료비만 수 천 만원이 나왔을 때였다. 이미 부모님은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혈혈단신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찌 해결할 도리가 없어 거주지 군청 사회복지과를 찾았는데 장애 등록과 함께 병원비가 의료보호 1종으로 처리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병원비로 고민이 많았는데 너무 감사했고, 그 상황이 내겐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25년의 생을 덤으로 살고 있기에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오늘도 스스로 3개의 그린모노 약물주사를 맞고 고통을 이겨내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지는 것에 신께 감사기도를 또한 잊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나에게는 고마운 일들이 이어졌다. 서울에 있는 한국혈우재단 서울병원에서는 한 번에 천만 원이 넘는 약을 매달 한 번씩 나누어 전해주었고 서울의 의사 선생님이 이곳 홍천까지 왕진 진료를 보러 와주기도 했다.


또한 내가 거주하고 있는 홍천 지역의 보건소에서는 방문간호사님이 주사를 놓아주러 일주일에 한 번은 방문하기도 한다
. 외롭고 깜깜했던 나의 삶에 하나 둘 도움의 손길을 받으며 별자리 같은 빛이 나의 인생을 수놓았다. 나는 서른이 넘도록 혼자 방안에서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동안 학교에 간 날이 6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일터에 나가시는 어머니의 등이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날에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운이 없어 몸과 정신은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그러다보니 한글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 내가 숨 쉬고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방안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사연을 듣다가 문득 내가 여기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라디오라면 여기 방 안에 갇혀있는 나의 이야기도 온 세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글을 쓸 수 있을 때 원고지를 꺼내 담담하게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고 그 사연이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통해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쪽 벽면에 경품이 쌓이도록 원고지에 사연을 쓰고 또 썼다.


그렇게 나는 오른손이 펜을 쥐던 모양 그대로 굳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 사연을 쓰다 보니 용기가 생겼다. 나약하고 초라한 나의 몸은 여기 집안에 두고 훌쩍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스피커가 아닌, 진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표정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했고 비록 속도는 더디고 몇 배로 힘든 과정이었지만 제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도 나는 화훼장식과 바둑, 장기, 수영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했다. 대회에 나간 상금으로는 쌀을 구매해서 저소득층 가정에 보내기도 하고 상금을 모았다가 농촌 경로당에 어르신들을 위해 대형 TV를 놓아드리기도 했다.


나는 라디오 사연으로 탄 경품을 동네 사람들에게 또는 지인들에게 싼 값에 팔고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소형 승용자동차를 장만했다
. 당시 어찌나 기쁘던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말하는 나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순간 나는 고마운 이 세상에 빚을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 푼 두 푼 조금씩 모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 홍천과 두촌, 남면을 오가며 어르신들에게 물품을 구입해드리기도 한다. 대단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저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후로 글을 모르는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가 신문과 편지도 읽어드리고 말벗과 심부름을 해드리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에 나가보니
, 몸이 저보다 더 불편한 사람도 많았다. 아예 방에서 꼼짝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친구들도 있고, 나는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현실적인 용기와 위로를 건넬 수 있다. 비록 몸이 많이 불편하지만 나 또한 많은 도움을 받아 온 만큼 앞으로도 다른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누는 삶을 살며 행복을 찾아 가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 또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행복을 찾게 되었다.


의 자신의 자기개발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여려가지 분야에 도전하고 있고
, 조금이나마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다. 봉사와 배려 나눔의 기부를 실천하는 홍천의 휠체어 타는 기부천사 닉네임이 따라 붙어 주위로부터 훈훈한 감동을 주며 다른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내가 소망했던 모든 것들을 다 누린 것 같다. 나의 작은 실천이 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 나는 앞으로도 손을 잡아줄 이가 많기에 그들을 돕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비록 장애를 가진 몸으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마음의 곡간에 언제나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기에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또 한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지만 삶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세월을 지나 세상 풍파를 다 이겨낸 어느 노인의 달관한 모습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나누고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과 행복을 나눌 것이다.


렇게 하나 둘씩 조그맣게 시작한 나눔과 봉사활동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 매주 주말이면 어려운 독거 어르신, 취약계층, 장애인 가정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외 소외계층 위해 노트북, 컴퓨터 등을 지원해 주고, 매월 생활비에서 조금씩 쪼개서 모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새로운 삶에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이라면 현재는 장애인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권익신장과 복지향상을 위해 앞장서고 더 많은 장애인 가족, 이웃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며 행복을 찾아 가고 있다. 사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떼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후원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눔을 실천하고 나면 스스로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주변에서 내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의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홀몸 장애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상당이 컸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의료복지 혜택이 많아지고 지원체계도 좋아져서 어려운 취약계층 가족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 나는 그저 받은 만큼 조심씩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희망과 꿈은 나이와도 상관없고 장애인에게나 비장애인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고 본다. 누구나 시련이 닥치면 좌절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 분명 기능하다고 본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때때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놓아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듯,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나는 장애가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장애인들은 장애를 비관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자존심을 꺾을 필요도 없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고 떳떳하게 주어진 숙명이나 운명이라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꿋꿋이 살아가야겠다. 비록 내 몸이 힘들어도 외롭고 소외된 이웃 장애인에게 따듯한 지원군이 되고 싶다.


읍내 가까운 거리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고
, 먼 거리의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거나 서울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갈 땐 자가용을 이용해 안전운전을 하여 서울을 다니고 있다. 자동차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에 소중하며 나의 보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병도 많이 호전되었고 이번 생활수기를 통해 나는 또 한 번 삶의 용기를 얻었다. 내가 받은 그 은혜를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항상 건강한 마음을 갖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장애인 가족과 함께 베풀고 나누며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내가 보여주는 깊은 울림의 기부천사 선행에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 말벗과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장애인가정에 따뜻한 지원군이 되어 드리는 찾아 가는 민원대행서비스를 그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 장애인 회원들을 만나 소통을 하고 독거 어르신과 장애인 가정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기부천사로 나누며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나의 목표이며,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삶을 휠체어 타는 기부천사로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에 꿈을 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