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아들의 여자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09-22 11:30:38


 

▲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도장애인체육회 이사.

 

세간에는 아들에 관한 재미있는 말들이 많다.


낳을 땐 1, 대학 가면 4, 군대 가면 8, 장가가면 사돈의 8, 애 낳으면 동포, 이민 가면 해외 동포.”, “잘난 아들 국가 아들, 돈 잘 버는 아들 사돈 아들, 빚진 아들 내 아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를 잇고 노후에 의지하고 사후 봉제사 받으려면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건만 너무 달라졌다
.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먼 친척만도 못한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아들 녀석에게서 복잡 미묘한 심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 아직은 결혼할 나이가 아닌 녀석에게 자주 오가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놀러 온 날이다. 여느 때처럼 부담 없이 녀석과 나, 녀석의 여자친구 셋이 즐겁게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녀석이 자기 친구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자 고무장갑까지 벗기면서 말리는 것이 아닌가. 식탁 위 반찬통을 정리하던 나는 녀석이 설거지를 하려나 보다.’하고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녀석이 그녀의 손을 이끌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니 요놈이 나보고 설거지를 하란 말이지? 저를 벌어 먹이느라 힘든 홀어미인데 제 여친은 공주고 어미는 무수리란 말이지?’ 일찌감치 길을 잘 들여야겠다는 마음에 식탁만 닦고 설거지는 버려둔 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맘 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녀석의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 아마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가 보다. 소외감 같기도 하고 수치심 같기도 한 고약한 심사가 올라온다. 조금 있으려니까 녀석이 거실로 나오며 과일을 달라 한다. ‘네 손으로 찾아 먹어, 그리고 설거지도 네가 해. 엄마도 쉬어야 하니까.’ 녀석은 갑자기 차가워진 내게 움찔하더니 곧바로 냉장고를 열고 딸기를 꺼내 간다. 그 뒷모습이 낯설다.


하지만 잠시 후 속 좁은 나 자신에게 피식 웃음이 났다
. ‘이게 뭐람? 정식 며느리도 아닌 친구일 뿐인데 노여워하다니. 내가 늙었나?’ 녀석과 담판을 지으려고 버려두었던 설거지를 하며 오만 생각을 했다. 만일 정식 며느리였다 해도 엄마인 내가 설거지를 했을 것 같다.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에게 김장을 해주고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는 시어머니들 심정을 알 것만 같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시어머니 위세
! 물리적인 힘이 경제활동의 원천이던 시대가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지식과 정보가 소득의 근원이고 맞벌이는 기본이다. 아들만 둘인 입장이고 보니 불안감이 인다. 행여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을 가진 며느리가 들어오면 어쩌나. 더욱이 그가 돈도 잘 벌고 지위까지 높아 내 아들을 주눅 들게 하면, 개구쟁이 시절 동네 친구에게 맞고 울며 들어올 때처럼 가슴이 짠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 장가들어 사돈의 팔촌이 되어도 좋으니 그냥 사랑하는 여자와 무탈하게 살기만 해도 좋겠다. 가끔 서운한 일들이 생기면 그때마다 내가 엄마다.’라는 주술(?)을 읊조리면서 마음을 달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