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라미 일기] 소설[小雪]도 지나고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0-12-01 11:19:06


 

▲ 우안 최영식 화백.

지난 1122일이 입동 이후 절기인 소설이었다. 아침, 저녁엔 추위가 제법이라 손까지 시렵고 아직 내복을 안입고 지내는데 어서 입으라고 재촉하는 듯 싶다.


낮엔 그래도 춥지는 않은 기온이다
. 문제는 겨울로 들어서며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풍지대에 가까웠던 춘천도 각 동마다 감염자가 나왔다.


신북읍
, 소양동, 퇴계동, 후평동, 근화동, 신사우동, 동면, 효자동, 칠전동 등 75번 확진자까지 확산되었다. 이게 춘천 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라서 걱정이 크다.


겨울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파급력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 24382명에서 25583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빠르게 퍼지고 있어 모두를 긴장시키는 중이다.


지난 주는
3백명 선을 유지해 왔는데 폭증에 가깝게 감염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의 확산세는 무서울 정도다.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도 속수무책으로 관망하는 것 말고는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 한다
. 26일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국외 발생현황 집계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감염 누적확진자는 5944만여 명, 누적 사망자는 140만여 명이다. 국가별 확진자 현황은 미국이 1227만여 명으로 제일 많다. 이어 인도 922, 브라질 608, 러시아 216, 프랑스 211만여 명 순이다.


사망자는 미국이 누적
25, 브라질이 16, 인도 13, 멕시코 10, 영국 5만여 명 순이다. 심각한건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고작 거리두기에 마스크 철저히 착용하는 정도다. 선진국들도 허상이었나 대책은 무용하고 무력하기만 하다.

 

선진국이라 어깨에 힘주던 나라들이 속절없이 코로나19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정된 것은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세상은 돌고 도는 순환으로 영원한 건 없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류가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도 바뀌어야 함을 일깨운다. 문명의 이기라 불리는 현대의 전기며 자동차, 온갖 기계들이 편리함과 경제 이익을 막대하게 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공해와 오염물질을 배출해왔다. 현재 인류의 미래는 결코 밝지않다. 아니 암울하다. 당대만 살고 말 기세로 돌진이다. 톰 하트만 저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은 그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원들을 고갈시키고 인구는 폭발 지경이다.


온난화로 남
북극의 만년빙은 빠르게 녹고 있는 중이다.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면 해안가에 있는 대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인구 40%가 터전을 잃게 된다.

 

누구나 우리 지구가 지금 상태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냥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그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뭔가를 해야한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인 톰 하트만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의 태고 조상들이 알고 있던 지혜, 즉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 그 속에서 신성을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데서 찾고 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젼혀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아주 오래된 세계관이다. 하지만 이 세계관은 우리에게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전혀 새로운 문명, 인류의 오랜 속원이던 비탄과 전쟁 없는 삶을 실현할 가능성을 갖게 해준다.’고 책표지 겉뒷면에 전체 내용을 짧게 요약해놨다. 아직은 소수지만 미래에 밝은 희망을 가지려 다방면으로 대안을 찾고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

 

가난하던 시대를 살아온 노년층들이 모두 그때가 불행했다고 회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더 많을 터다. 물질의 풍요가 행복을 좌우하지 않음을 부자들의 대표인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 알수 있다. 형제간에 재산을 더 가지고자 분쟁이 일어나고 소송과 재판으로 원수처럼 싸운다. 99섬 가진 사람이 1섬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100섬을 채운다는 말이있다. 가진 자의 욕심은 고래로 바뀐 것이 없다. 백 섬은 천 섬이 부러울테고 천 섬은 만 섬이... 십만 섬, 백만 섬 이런 식으로 커져간다. 만족의 끝이 있을 것인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의 대부분은 편안하거나 사소한 것, 미소나 따듯한 마음, 정과 사랑이 담긴 것에서 받지 않던가. 인류의 역사가 쓰여 진 것은 대략 1만년이 안된다. 고고학으로 가면 십 만 년 이상도 올라간다. 근대산업혁명 이후로 급속한 변화가 생기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공해, 자원 고갈이 동반됐다. 모두의 욕심들도 커졌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방송프로가 있다. 이외로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현대인이 상실한 어떤 로망같은 것을 자연인들은 실현하며 살아간다. 도시생활에서 얻은 병이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치유하는 과정에 공감하게 된다. 거의 다 혼자 지내는 게 맹점이다. 가족이 있어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동조해도 함께 살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를 댄다. 아마도 이유와 상관없이 진짜는 불편이 첫째일 터이다. 전기가 안들어가는 원시 환경이 대부분이니까.


역설이지만 태고적부터 살아온 방식으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기에 죽음 직전까지 갔던 중병도 이겨내고 만족과 행복
, 평화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생활쓰레기가 안보인다.


쓰레기를 만들 일이 없다
.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 동화되는 것들먼 사용해서다. 이런 생활은 누구나 할 수 없다. 그러나 도시에서도 소박한 자연의 삶이 주는 지혜는 받아들였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