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3월의 행보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3-16 10:32:37


 

▲ 우안 최영식 화백.
 

310, 영월 주천에 있는 젊은달 와이파크를 찾아갔다. 거기엔 젊은달 미술관이 있고 목탄으로만 작업을 하는 이재삼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폭포를 소재로 대작을 많이 내놓는다, 초기 때 대숲 작품을 본 게 유일하고 그 후는 주로 작품사진으로 접했다.


춘천서 주천까지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반 거리다. 미술관은 주천읍내 보건소 뒷쪽 높지 않은 넓은 언덕에 터잡고 있었다. 명당이 따로없다. 건물들이 미술관같지 않고 평범했다.


입구에 붉은 쇠파이프로 만든 조형물은 대나무 이미지를 표현한거고 소나무 토막을 둥굴고 높게 쌓아올리고 맨 윗쪽 가운데는 이탈리아의 판데온처럼 둥근 구멍이다
. 입구의 이어있는 두 작품이 다 강릉대 미대 최옥영교수 작품이다. 미술관은 동선도 특이했고 이색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교수의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대형작품들이 많았다. 쇠똥을 이용해 작품을 한 기사를 오래 전에 접했었고 그의 작품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 된다. 이재삼의 작품들도 대나무 말고는 처음 만났다. 작품에 관한 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작가다. 그림은 역시 원화를 봐야한다.

 

영월로 출발하기 전 예전 산막골 주소로 보낸 택배를 발산리로 가져다 달랬더니 타 택배사가 북산농협에 맡긴걸 원 배달처인 학곡리 로젠택배에 도로 가져다 놔 들려서 찾았다. 보낸 이가 익명이다. 내용을 보니 한지 여러 종류였고 편지 한 장이 안에 들어있다. 쑥쓰럽고 민망하여 자신을 밝히지 않겠다며 좋은 종이도 많겠지만 혹여 소용이 된다면 싶어서 결례인줄 알지만 용기를 내어 보낸다고 했다. 내 작품집을 가끔씩 보면서 자연을 느끼고 위로 받고 한단다. 고마운 분이다. 이런 경우는 또 평생 처음이지 싶다. 장지, 배접장지, 흑지, 홍지, 한지 등 십여 종을 나눠서 넣어놨다. 흔히 쓰이는 종이들이 아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진다. 언젠가는 만나려니 여긴다.


택배사의 연락을 받고 시간이 안 돼서 일주일을 넘기고 받을 수 있었다
. 산막골서 시내로 나온 지 햇수로 3년째인데 이 분은 내 근황은 잘 모르는 듯 싶다. 좋은 작품을 담아내어 보답할 것이다.


주천에서는 소설가 또 우솔을 만났다
. 운영하고 있는 업소도 가봤다. 살아오며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는데 이젠 안정을 찾은 듯 하다. 본령이 소설을 써야 할텐데 손놓고 있는 듯 해서 안타깝다.


살며 경험한 것들이 농축되어 늦게라도 걸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 그럴만한 역량은 충분하다.

 

주천을 출발해 원주 문막읍 반계리에 있는 노거수 은행나무를 보러갔다. 얼마나 오랫동안 별렀던 만남인가. 사진으로만 숱하게 접했었다. 8~9백년 될거라지만 천년넘은 기품이다. 수형이 전국의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고개가 끄떡여지며 긍정이 절로 된다. 정말 수형이 균형 잡히고 건강해 보이며 아름답다. 등걸은 노인이고 중간가지는 중년에 바깥 쪽은 젊어 조화롭다. 인간으로 치면 전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가졌다. 이런 조화를 노거수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형이겠다. 여러 그루가 모여있는 것인지 한 뿌리의 한 나무가 지상서 부터 여러 가닥으로 나뉜건지 헷갈린다. 뿌리가 땅위로 그믈망처럼 일부 노출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런 노거수와의 만남은 언제나 감동이다.


긴 세월동안 무수한 풍파와 질곡을 견디고 지켜보아온 인간사가 그 속에 아로새겨져 있을 터이다
. 마을에 위치해 있으니 그렇게 여겨진다. 달관한 초인이랄까. 거인인 것일까. 범접 못할 신성이 절로 느껴진다.


문막은 명봉산 명도암에 몇 차례 다녀갔었다
. 그럼에도 일행이 있거나 일정에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찾아 볼수 있었다. 인연이란 억지로 닿지 않는다.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기꺼웠다.

 

11일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들렸다. 박수근화집을 구입하기 위한 행보다. 어쩌다 보니 오래전 첫 화집 나왔을 때 박화백 은사이신 오득영 선생 맏아드님이 가지고 있는 화집을 빌려 복사해 가지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그걸로 충족해 왔는데 복사본으론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았고 화집을 어디서 구하나 생각다가 박수근미술관엔 있겠다 싶어 간거다. 두 종류가 있어 다 구입했다. 돌아오는 길 추곡약수에 있는 식당에서 약수밥으로 아점을 먹었다. 주문해놓고 약수터에 올라가 약수 세 바가지를 마셨다. 요즘 속이 느글거렸었다. 약수를 마시면 한 달이상 속이 편해진다. 추곡약수와 인연도 참 오래됐다. 그만큼 약수가 내 몸과 길들여졌겠다.


박수근미술관 이웃에 있는 부속 전시실 초입 벽에 김유정소설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를 닮은 소녀가 아기를 업고 있는 박화백 작품을 모사해 붙여놓은 게 있다
. 이게 참 정감이 간다. 김유정문학촌에서 동백꽃전을 하며 그 모습을 곁들여 보기도 했다. 김유정과 박수근은 동시대 사람이다. 1930년대의 시대상이 김유정 문학의 소재가 되고 그 시절의 인물과 복장 모습이 박수근 그림에 담겼다. 가장 한국적이란 공통점을 분야가 다름에도 가졌다. 평민들의 일상을 주로 다룬 것도 같다. 박수근의 삶에서 용기를 많이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