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커져가는 봄기운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3-23 10:51:28


 

▲ 우안 최영식 화백
 

3월도 중순을 넘겼다. 17, 18일 이틀은 오전 햇볕이 포근해 마당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봄기운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제 산수유는 도처에 활짝 핀게 보이고 목련이 부풀거나 반개한 것도 봤다
.


초당 여기저기에도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솟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 움직이면 땀이 난다. 낮엔 난방을 안해도 된다. 그러나 시내에 있는 화실은 햇볕을 못 받아선가 춥지는 않지만 찬기운이 더 많아 자꾸 해바라기하러 화실 길 건너에 있는 소공원으로 나가게 만든다. 야외무대도 마련되어 있는 아담한 공간이 정겹다. 작업할 것들이 쌓여있어 매일 화실에 나가고 있다. 모처럼 그렇다.

 

인물화 세 점을 자작나무로 만든 판넬에 그려야 하는데 수 십년 안한 손이 굳어 도무지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이달 말까지 완성해 내야하는데 마음만 바쁘다.


김유정 초상과 목불 장운상 화백의 미인도
, 그리고 김유정 대표작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를 담아내는 일이다. 한국화에 입문하기 전 강촌에서 아무런 기초도 없이 타고난 소질만으로 주민들 초상화를 여럿 그려준 적이 있었다. 희미한 도민증에 있는 사진을 보고서다. 가져가며 부모님과 똑같다고 했다. 베토벤 초상과 밀레의 자화상도 그려봤었다. 모두 연필화였다. 내 자화상도 수채화로 그린 게 있다. 다 옛날 이야기다. 50년 동안 인물화는 손놓고 있었으니까. 인연이란게 참 묘하다.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담당이 지정을 한 것이고 자료를 줬다. 위에 말한 인물들이다. 김유정은 강촌에서 가장 어렵던 시절, 안회남의 김유정을 묘사한 글 겸허를 접하며 내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고 그 글의 일부를 써서 김유정 문학촌에 기증했다. 복원한 생가 안방에 걸려있고 화선지에 인쇄해 문학촌에서 기념품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해놨다. 몇 년 전 산동백을 소재로 문학촌 낭만누리 전시실에서 최초의 문인화전을 가지기도 했다. 그때 박수근 화백 작품에 나오는 아기업고 서있는 단발머리 소녀가 꼭 점순이어서 점순이 관련 대목을 화제로 써넣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었다. 박화백 인물이나 봄봄의 시대가 1930년대를 미술과 문학으로 다뤄내서다.


점순이와 김유정 초상을 그리게 되다니
, 그런 바탕이 있기에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장운상화백은 76년 제4회 강원도미전에 심사하러 오셨다가 내 작품을 금상으로 밀고, 그날은 약속이 있어 바로 서울행, 그 다음날 나를 만나러 다시 춘천에 발길, 화실로 찾아오셔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인연이 있다. 현재 춘천미술관이 된 중앙교회 목사님을 부친으로 두신 춘천 출신인 걸 그 때 알았다. 묘소가 춘천 신북읍 유포리에 있기도 하다. 화필을 잡으며 처음 만난 대가였다. 그러니 장화백의 미인도를 그리게 된 것도 이런 인연의 작용인가 싶어 남다른 감회를 불러내게 만든다. 내가 목불 장운상 화백의 미인도를 그릴 거란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화필 잡은지 3년차의 무명인 애송이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만나러 오신 후의를 화단활동을 하며 잊은 적이 없다. 금상받은 작품을 지금도 화실에 걸어놓고 있음이다.

 

청탁받은 오죽헌 율곡매도 쳐야하고, 책을 낼 분의 표지 제자도 써야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그러니 3월은 일복이 터지는 달이다.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몸도 피로가 누적되고 있건만 요즘 나를 만나는 이들마다 내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대부분 꼭 한다. 희한한 일이다. 이런 말은 어쩌다 아주 드믈게 인사 치례인줄 알고 들었는데 근래엔 모두 정색을 하고 말한다. 뭐가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알수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여러가지 구상이 머리 속을 넘나든다. 넓은 작업실에서 대작에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나만의 독자성을 가진 작품세계를 펼쳐보지 못했다. 그리는 게 생활이었을 뿐 뭔가 추구하고 개성을 창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언제나 가슴속을 맴돌았다. 과연 만년에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