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잃어버린 안경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9-07 11:43:35

 


9월 첫날, 1회 수요일에 있는 현장수업을 잘 치뤘다. 두 분이 사정으로 결석.


둘째 날은 화실에서 손님을 두 분 맞았고 점심을 같이 했다
. 그동안 작업해온 홍매도 소품 14점과 사각 반절 크기의 홍매도 2, 40여 센티에 가로 길이 2미터가 좀 넘는 죽매도 1, 소품 산수화 3점에 낙관 작업을 했다. 산천화루에서 온전히 한 작품은 죽매도 1점이고 다른 작품들은 집에서 작업한 걸 통일된 형식을 추가해 화루에서 완성한 것이다. 간지와 아호를 같이 쓰거나 아호만 쓴 것도 있다. 새 화실에서 시작된 매화의 새로운 형식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집에 있던 석란도 1점도 가지고 올라가 바위에 첨필을 하고 마무리, 낙관은 된거다. 오후 내내 여러 시간 몰입을 했다. 셋 째 날도 손님 세 분을 만났다.

 

서간지 소품 17점에 우안[牛眼] 서명을 하고 작은 도장을 찍는 일은 무척 신경 쓰이고 조심스러웠다. 여백이 많지 않아 더욱 그랬다. 화실 이전 후 4개월 만에 이룬 21점의 결실이다. 사각 반절 홍매도를 두어 달 화판에 붙여놓고 그냥 끝내기 미진해 계속 궁리를 하다 직선의 햇가지를 첨가하면서 내 화업 생애에 처음으로 한 형식을 갖춘 작품이 매화부터 시작된 것이다. 산천화루 공간에서 이뤄졌으니 의미가 있다. 산수화에서도 시도해 볼 생각으로 있다. 이른 봄에 용화산 자연휴양림을 가보고 떠오른 것들이 있어서다. 화천 가는 중간지점에 있는 구화곡 주변도 자극을 주는 산수들이다. 흙과 바위의 적절한 안배, 변화와 거기에 소나무와 잡목들의 다감한 어울림이 그렇다. 낙엽이 지면 시작하련다.

 

지난 달 말 평소쓰던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날은 집 울 밖도 안나갔었다. 평소의 내 동선은 뻔하다. 수십 번이나 집 안팎을 뱅뱅 돌며 찾아봐도 안보였다. 이럴 때 내가 하는 말이 귀신 곡할 노릇이라는 거다. 여유 안경이 몇 개 있기에 불편을 겪지는 않았으나 애용하던 것이 없어졌으니 기분이 묘했다. 며칠 동안 집중이 안됐다. 생각만 나면 구석구석 안경을 찾아 다녔다. 달샘이 와서 있는 동안 내 말 듣고 눈여겨 살폈어도 오리무중이다. 넷째 날은 표구사 박사장이 화실로 와서 낙관한 작품 21점을 액자하러 가져갔다. 모처럼 느껴보는 개운함이다.

몇 점 추려서 앞으로 있을 뿌리전과 여러 전시에 낼 예정이다. 해야 될 작업이 밀려있는 상태다.


귀가하다가 이장님댁 이웃인 정선생댁에 들리니 대문 옆 공간에서 묵난 공부 중이었다
. 김밥과 만두를 내놔 맛있게 먹었고 수겸초당까지 같이 와서 둘러보고 갔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봐주겠단다. 목공에도 조예가 있고 한옥학교에도 다닌 이력이 있다. 문인화를 내게 배우는 중이다.

 

9월 다섯째 날, 집 울 안에서만 지내다 가을이 매어놓은 옆마당에 잡초가 우묵장성이라 볼 때 마다 뽑아야지 벼르다 오후에 갑자기 목장갑까지 끼고 덤벼들었다. 호미도 없이 맨 손 작업이다.


바랭이가 주종이다
. 뿌리가 억세서 꽤 힘이 들었다. 제초를 하며 옆담장 쪽에 있는 안쓰는 야외 화장실 앞 풀섶에서 잃어버린 안경을 찾았다. 어떻게 이런 황당함이 생기나? 왜 거기에 떨어져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그 풀섶에 발을 디딜 일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평소에 쓴 안경을 움직이다 떨어뜨린 경험도 없다. 맘춤안경이라 걸쳤을 때 조임이 헐렁하지 않음에랴. 화장실 옆 공간은 가을이 집이다. 매어놓은 줄이 허용하는 범위에는 풀이 없어 거기서 가을이와 자주 놀지만 내가 풀밭에 들어갈 일이 없다. 거의 일주일만에 애용하는 안경을 찾았으니 기분은 마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