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밤에 울던 뻐꾸기

지소현 승인 2021-09-07 13:12:23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열두 살 적 내가 살던 산골은 풍경화처럼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 속에선 낯익은 사람들끼리 느릿느릿 살아갔다. 가끔 외지의 보따리장사가 마을에 들어오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는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어느 여름날이다. 조용하던 산골은 당시의 섬마을 선생님 연속극만큼 흥미진진한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주인공은 우리 옆집 열일곱 살 춘옥 언니였다
. 사건의 발단은 품앗이 꾼들이 언니네 감자를 캐던 날이었다. 응당 점심을 준비해야 할 언니가 슬그머니 사라진 거였다. 언니네 엄마가 일손을 놓고 집으로 달려와 보니 딸이 보이지 않았다. 부엌 아궁이엔 불을 땐 흔적도 없을뿐더러 무쇠솥이 텅 비어 있었다. 서둘러 밥을 짓느라 찾을 틈조차 없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야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마을에 친구도 없고 또한 사라질 이유도 없어서 급기야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해 질 녘에 언니가 천연덕스런 얼굴로 돌아왔다
. 그 무렵이었다. 나는 밤이면 뒤란과 붙은 산에서 유난히 큰 뻐꾸기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딘지 꺽꺽하고 숨차게 들리던 괴상한 뻐꾸기 울음... 들로 산으로 언니를 졸졸 따라 다니던 내게 언니가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밭에 열무를 솎으러 갈 때도 거울을 보았고, 가끔 엎드려서 양면괘지에다 무언가 끄적거리다 내가 가면 얼른 감추었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종이를 태우다가 황급히 불쏘시개로 깊숙이 밀어 넣기도 했었다


나는 밤 뻐꾸기와 언니를 남몰래 연관 지어 보고는 했다
. 왕자처럼 멋진 총각이 소나무 뒤에 숨어 뻐꾸기 소리로 애타게 언니를 부르는 상상을. 그것이 현실로 드러나 소문이 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구 밖 영달이 총각과 그렇고 그래서 얼른 혼사를 시켜야 한다고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네.” 넋두리하는 언니네 엄마와는 달리 내 눈에는 언니가 못된 송아지는 아니었다. 봄이면 진달래꽃은 곱다고 감탄하면서 딸의 피어나는 청춘은 어찌 남부끄러웠을까. 나는 막연히 언니를 보호하고 싶어졌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 날 언니는 못된 짓 협력자로 나를 지목해 주었다
. 이른 아침 등굣길에서다. 논두렁 밑에서 기다리던 언니가 영달이 오빠에게 전해달라고 연애편지를 쥐어 주었다. 그냥 들떠서 편지를 전해주었고 답장까지 여러 차례 받아 주었다. 그해 가을, 언니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쓴 언니와 청색 두루마기에 사모관대를 한 영달 오빠의 혼례식이 있었다. 비밀 우체부였던 나는 골짜기를 떠들썩하게 한, 엉덩이에 뿔난 언니를 마음껏 축복해 주었다. 그 후 언니는 5년도 지나지 않아 삼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스무 살 남짓했지만 친청 어머니 도움 없이도 튼실하게 잘도 길러냈다. 애지중지 곡식을 가꾸는, 부지런한 농부의 딸만이 가진 저력이었으리라. 일찍이 잘 지은 자식 농사는 40대 후반이 지나자 손자 손녀까지 얻었다. 이어 또래들이 할머니가 될 즈음인 60대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인생 이모작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 빠르게 소통하며 달리느라 지칠 때도 많다. 그래서 여자의 최종 목적지가 한 남자의 아내였던 그 시절 밤 뻐꾸기(?) 전설이 그립다. 긴장을 풀어 주는 웃음 가스 같은 나만의 추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