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다시 보는 코로나 시대

지소현 승인 2021-09-17 12:00:05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무장한 장수보다 더 두려운,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민족의 대명절 추석 연휴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온 인류가 허공에 맞서 3차 대전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생소한 두려움이고 보니 정부도 국민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피소드도 많았고 더러는 교훈도 얻었다.


우선 마스크와 관련된 이야기다
. 얼마 전 한 카페에서다. 맞은편 테이블 여성이 내게 목례를 보냈다. 누군지 떠오르지 않아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다음날이다. 후배에게서 왜 내 친구를 모른 체했느냐고 따지는 전화가 왔다. 설명을 듣고서야 생각이 났다.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가 함께 있던 여성을 인사시켜 주지 않았던가. 눈썰미 없는 나는 마스크를 쓰고 만난 초면의 사람이 마스크를 벗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 한쪽 귀가 난청인 나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말한 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상대방 입 모양이 의사소통을 분명하게 해주는데 마스크를 썼으니 깜깜하다. 오죽하면 전국민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맞서 청각·언어 장애인들이 소통의 단절감을 호소했을까. 그 결과 투명한 막 너머로 입이 보이는 마스크가 탄생했다. 어떤 이가 예전에는 마스크를 쓴 채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고 하면 의심하며 벗으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스크를 안 쓰면 은행 근처도 못 가는 세상이다.”고 말해 웃었다.


마스크 대란 때 천태만상도 잊을 수가 없다
. 새벽부터 약국 앞에 줄을 섰던 인파들, 6.25 전쟁 당시 식량 배급을 받으려고 늘어선 흑백 사진 속 군중 같았다. 품귀 현상까지 일어서 휴지와 키친타올로 임시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으며, 공적 마스크 제도니, 마스크 5부제니 하는 전대미문의 법도 지켜야 했다.


정말이지 색조 화장한 입을 마음껏 드러냈던 지난날이 꿈만 같다
. 하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는 오염들을 얼마나 많이 흡입했을까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하다. 실제로 환절기만 되면 목감기를 달고 살던 내가 마스크를 쓰고부터 증세 없이 지나지 않았는가. 귀찮고 불편한 제3의 피복이 기관지 보호막이 된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마스크를 챙기리라.


그리고 역병은 인간관계 소중함의 교훈도 주었다
. 미묘한 갈등이 존재하는 관계가 어디 한둘인가. 내가 아는 경미 한 뇌성마비 장애 여성 이야기다. 평소 친정 아버지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그 앞에 가엽고 부족한 자식인 자신이 싫다고 했다. 기대에 못 미친 좌절감이 뭉친 응어리일까. 딸의 억눌림을 모르는 아버지는 출가한 후에도 자주 찾아와 더욱 싫었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심경을 말했다. 거리 두기로 아버지의 방문빈도가 줄어들자 처음 몇 달은 홀가분했으나 점차 허전해 졌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 눈물도 솟았다고 했다. 물리적으로 멀어진 틈새가 둘 사이 유해(?)성분을 희석한 것이다.


이처럼 삶의 곳곳에 드러나는 바이러스 영향력
!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는 진리도 입증했다. 가치관, 지식, 사랑, , 희망, 용기... 모두 보이지 않는 힘이다. 사실 최첨단 문명도 누군가가 상상력에 도전한 열매 아닌가. 덕분에 코로나 백신이라는 무기도 개발되어 정말 감사하다. 이참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고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손 세척에만 열심을 낼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균까지 씻는 노력을 해야겠다. 말과 행실에 독성이 없는, 정제된 삶이야말로 얼마나 강력한가. 방어하느라 전전긍긍해야 하는 적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