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결실의 계절 앞에서

지소현 승인 2021-09-28 11:22:26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결실의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이 따가운 햇살 속을 헤엄친다. 잡초들이 지난여름 싱그러웠던 흔적을 들추며 바스락바스락 울고 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죽을 줄 안다는 진리 앞에 그 누가 토를 달 것인가. 어느 사이 나도 들풀처럼 탄력을 잃어갈 만큼 살았다. 젊어 보이려고 얼굴과 옷차림에 신경을 쓰나 최후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가여운 노력에 쐐기를 박는 증표까지 생겨버렸다.


2016
1029, 할머니라는 칭호를 단 것이다. 2015년 여름에 결혼한 큰아들에게서 손주가 탄생했다.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3세를 보는 순간 내 늙음이 자각되었다. 2.7kg에 불과한 녀석이 나에게 무거운 철(?)을 선물하다니. 쭈글쭈글한 얼굴을 더욱 구기며 우는 녀석이 나를 30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어쩌면 그리도 내 아들의 첫 모습과 똑같을까. 녀석이 왕사탕만한 주먹을 휘두른다. 마치 대장부의 위엄을 발산하는 것처럼. 신기하고 놀랍고 귀엽고... 오만 감정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 정말 할머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할머니라 부르면, 기분 나빠서 못 들은 척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녀석이 할머니라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불러도 마냥 좋을 것 같다. 천륜이 주는 사랑의 힘이 아닌지.


갑자기 며느리가 가깝게 느껴지고 무조건 예쁘다
. 자식 못 낳는 며느리를 타박하던 그 옛날 시어머니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기묘한 놀이도 생겼다. 아들 내외가 톡으로 보내오는 사진을 보며 달콤함을 누리는 것이다. 휴대폰은 점차 손주 사진이 가득하고 동영상이 용량을 채워간다. 보고 또 보고... 그래도 부족해 화면까지 쓰다듬으며 정말 신기해. 어느 별에서 왔니?’ 중얼중얼... 인간의 본능 중에 모성애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돌아보면 홀로 고군분투 두 아들을 기른 세월이 감사하다. 물심양면으로 고달픈 긴 시간을 어찌 견디어 냈을까.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부터 나는 홀어미 가장이 되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두 아들 뒷바라지도 해냈다. 새벽에 일어나 아들들을 깨우고 차에 태워 등교시키고 출근했었다. 퇴근 후에는 야간 대학엘 가고 아들들은 직접 저녁밥을 챙겨 먹으면서 자랐다. 정말이지 슬퍼할 틈도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직장인, 학생, 글 쓰는 사람, 15역의 장애 여성이 바로 나였다. 그 환경에서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친구들 틈에서 허허로웠을 두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그러나 불평 한마디 없이 튼튼하게 성장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도 가졌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변명 삼아 패륜이 판을 치는 세태에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래서 제3세인 손주 탄생이 더욱 감동스럽다.


누군가가
인생의 4계절은 한 번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도 있다. 이제 내 삶의 가을 길목에서 폭풍우 속에서 지나온 봄, 여름을 돌아본다. 무사히 견디고 버틴 열매로서 손주 자랑을 마음껏 늘어놓는 푼수가 될 준비를 한다. 늙어 보여도 개의치 않으며,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말이다. 아울러 다가올 겨울이 따듯하고 넉넉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