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9월의 끝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10-05 11:03:08

 


순식간인 듯 한 달이 가버리고 9월의 끝 날이다. 잔잔한 일상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산천화루에서 현장학습이 진행되며 소소한 작품들도 해나갔다. 일단 붓을 잡으면 일정 수준의 작품이 안정적으로 나온다. 최근 소품 백매도[白梅圖]를 세 점 쳤다. 아직 낙관은 안한 상태다. 홍매[紅梅]와는 아무래도 격이 다르게 마련이다. 매일이 다른 단조롭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어서 좋다. 날씨 또한 그런 편이다. 적당히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여주며 구름도 다양하게 낀다. 비도 적당히 내린다. 더러 햇살이 뜨겁기도 하면서 적당한 변화를 주는 속에 곡식들이 여물어간다. 산막골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바쁘지 않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일로 연결되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는 게 그렇다
.

 

하늘아래 첫 동네 같은 산간오지 산막골에서 19년을 꽉 채우고 나온 게 되돌아 보니 참 신기하게 여겨진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들어간 초기부터 밖에서 닥쳐온 시련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었다. 평소 모르던 이들이 많이도 찾아왔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산막골에서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초기 노폭 3미터 비포장 도로에서 점차 넓혀지고 부분 시멘트 포장이 점차 교행이 가능한 아스팔트 포장에 가드레일까지 설치된 훌륭한 길로 변하는 시간대였으니까. 거의 끊임없이 공사가 있었다.


동네길도 모두 시멘트 포장이 됐다
. 주민들도 대부분 바뀌어 갔다. 난시청이 해소되고 위성방송을 통해 채널도 시내와 다름없이 다양하게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또한 전화모템에서 초고속으로 시내와 다름없이 되는 시간대를 살았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에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또 얼마나 빨랐던가. 간간이 산막골 생활을 반추하게 된다.

 

오늘 점심 때도 초당에서 달샘이 만들어 놓고 간 밀푀유나베로 점심을 같이 먹으며 형님과 나눈 이야기도 그렇다. 청각장애를 가졌고 비사교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에 지맥, 학맥도 전혀 없는 사람이 참 많은 인연을 만나 교유를 가졌으니 기적같기만 하다. 나라를 움직인 인물도 있었으나 손톱 끝만큼도 도움을 받지 않은 것엔 자부심도 가진다. 독립독행인 삶이었다.


인복이 많았다
. 어려울 때는 극복하는데 도움되는 사람이 꼭 나타나곤 했으니까. 2007년 산막골생활 결과물로 강원일보 초대전을 성공리에 치뤄냈고, 다음 해에는 이탈리아 로마 국립동양예술박물관 초대전을 36일간 로마에 머무르며 생생히 체험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뜻한다고 되는 일들이 아니다. 하물며 마음 먹어본 것도 아님에랴. 꿈같은 날이 이어졌었다.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겁쟁이가 사피엔자대학 대강당에서 시연회를 가진 건 내 평생 잊지못할 체험이 된다. 학생들이 대강당 좌석을 꽉 채웠고 서있는 학생도 많았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시내 변두리로 나오는 상황이 됐다. 아무런 준비도 형편이 되지 않았음에도 어찌저찌해서 소양댐 아래, 신북읍 발산1리에 자리를 잡았다. 전 생애를 살아오며 늘 그랬듯이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전개된 일이다. 아예 계획이란 걸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으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적응을 잘해왔다. 좁던 넓던, 도심이든 산촌이든, 환경과 건물이 어떻든 내 기운으로 채우면 됐다. 다종 다양한 공간을 경험했다.


열다섯 번이 넘는다
. 각양각색이었다. 작품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건 신천화루가 처음이다. 화장실과 수도까지 실내에 있으니까. 넓이만 조금 아쉬운 정도다. 내가 화필을 잡으며 축적해온 무르익은 작품들을 부지런히 해내면 된다. 그럴 수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