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나잇값

지소현 승인 2021-10-05 11:04:53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나잇값이란 말이 있다. 사는 동안 쌓인 경험과 지식이 변별력이 되어 처세에 오류가 적다는 의미다. 다르게 말하면 나이가 들수록 지혜롭고 너그럽다는 것이다. 늙음의 초입에 들어선 나는 과연 얼마나 값이 나갈까. 가늠해 보니 빈약해 보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아 부끄럽다.


예를 들면 하찮은 일에도 불끈 성을 내거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큰소리로 웃는 것이다
. 솟아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킬 수 있어야 점잖게 보이건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으니 어찌하리오. 혹자들은 이런 내 모습에 만년 소녀 같다고 하지만 결코 칭찬은 아니다. 외부의 자극에 즉시 반응한다는 것은 내 안에 더듬이가 날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우리 아파트에서 가끔 보는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분은 당신이 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다른 사람이 탈 때마다 짜증을 낸다. “옆에도 있는데 왜 하필 이것을 세우지? 바빠 죽겠는데. 에효!” 민망하게 면박을 주고 한숨까지 쉰다. 전능한 투시력이 없는 이상 어찌 바쁜 할머니가 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겠는가. 발을 들여놓자마자 할머니의 짜증 난 목소리를 듣는 이웃들은 어안이 벙벙해도 대꾸하지 않는다. 그분의 모습이 입을 다물게 해서다. 고사리처럼 구부러진 허리와 휘어진 다리, 켜켜이 쌓인 각질 위에 골 깊은 주름이 짠하다. 숱 없는 흰머리가 부스스하니 한 많은 세월을 풀어 놓는 듯하다.


어느 날 나도 할머니의 혀에 사정없는 찔림을 당했었다
. “아니 왜 이것을 세우지? 옆에도 있는데...” ‘할머니가 하필 왜 이곳에 계셨지?’ 속으로만 받아치면서 엘리베이터 특성을 설명해 드릴까 하다 입을 다물었다. 우리 아파트는 나란히 설치된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선택의 여지없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특성이 있다. 즉 오른쪽 것이든 왼쪽 것이든 어느 한쪽만 눌러도 두 대가 동시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용이한 것이 작동해 문이 열린다. 그래서 할머니가 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해시켜 드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도대체 몇 초 동안 멈춤도 참지 못하는 그분의 조바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 무엇이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화나게 할까. 문득 나의 깃 세운 감성들도 그분과 같은 병리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무뎌져야만 하리. 타인을 살피고 여유롭게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값지게 늙어가는 것 아닌지.

 

공자는 나이에 대해서 세세토록 남는 측정값을 내놓았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志學) 서른에 입신했으며 (而立), 마흔이 되니 세상일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不惑), 쉰에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 (地天命), 예순에 귀가 순해지고 (耳順), 일흔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쫓았으되 법도를 넘어서지 (從心) 않았다 했다. 나는 귀가 순해질 나이에 이르렀다. 어떤 말을 듣든지 즉각 반응하지 말자. 주름살 없애는 크림을 바르는 것처럼 시시각각 튀어나오는 감성들을 평평하게 다림질해야 하리.


문득 누군가의 글도 생각난다
. 60이 넘으면 긴 문장은 두 번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87세는 유령을 봐도 놀라지 않을 나이, 93세는 한국말도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나이, 99세는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 있는 나이, 100세는 인생의 과제를 다하고 그냥 노는 나이라고 했다. 절절하게 공감한다. 나이가 돈 받고 파는 물건은 아니지만 늙음의 초입에서 얇은 지갑에 나잇값을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