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져 주는 행복

지소현 승인 2021-10-19 10:45:55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적응해야만 생존 가능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도태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가 인간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두 아들이 어린 시절이다
.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은 형은 놀이 때마다 동생에게 져 주었다. 달리기, 팔씨름, 딱지치지, 공차기.., 최선을 다하는 듯 엄살을 부리다가 패배를 선언하는 형.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생. 둘의 모습은 똑같이 사랑스러웠다. 이길 수 있었다고 변명하지 않는 형의 배려가 미더웠고, 매번 지는 형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신감 충만한 동생이 기특했다. 그 어떤 드라마가 이처럼 평생 감동의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살면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얼마 전 주일 예배시간이다
. 담임 목사님이 다 함께 일등이라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몇 해 전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다.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장애물 넘기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란히 뛰던 댓 명의 남자아이들이 일제히 획 뒤돌아서 지나온 길을 다시 달렸다. 혼자 뒤 쳐져 뒤뚱뒤뚱 오는 자그마한 꼴찌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이내 그 친구와 속도를 맞춰 골인 지점을 향해 함께 뛰는 아이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눈물을 글썽이는 학부모들도 보였다.


꼴찌의 주인공은 연골무형증이라는 장애인이었다
. 유전적으로 팔다리가 불균형을 이루고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이다. 당연히 또래들과 신체기능이 다르니 운동회가 두렵고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 친구의 손을 잡고 달리는 아이들! 진정 다 함께 일등이 아닌가. 그 장애인 어린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한 인터뷰 장면도 나왔다. “그때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용기를 얻어 꿈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유튜버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지고서도 기뻐하는 사람들 덕분에 살만한 세상
! 삶의 현장에도 있다. 잘 아는 미용실 원장님 이야기다. 물질만능 세태에서 돈벌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기적으로 가게 문을 닫고 복지시설 어르신들과 장애인들 머리를 잘라 주고 있다. 하루 이틀 돈벌이를 포기해도 될 정도로 부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봉사활동이 소득이 생기는 것만큼 뿌듯하다는 그분의 말. 형이 동생에게 져 주던 마음과 비슷한 맥락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경쟁자를 넘어뜨리지 않으면 밟혀 죽는다고 외치는 세태가 되었다
. 모든 영광은 승자의 것이며 패자의 몫은 동정과 조롱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언제라도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사회는 강자만의 독식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한계치를 넘으면 오히려 패자보다 더 심한 조롱의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아이 사탕을 뺏어 먹는 어른의 치졸함을 비웃고,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사업주에 분노하며, 우월한 지위로 약자를 이용하는 비열함에 응징을 가한다. 이는 더불어 사는 것이 정의이며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이다. 굳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원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집단 공감.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날마다 져 준 형 덕분에 자라서도 우애 깊은 두 아들과 초등학교 시절 함께 달려 준 친구들 때문에 용기를 갖게 된 장애 청년, 수입을 포기하고 나서는 봉사자. 정말이지 인생은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도 이제 져 주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것들에서 벗어나야겠다. 차라리 져 주면서 나이 들어가려 한다. 그것이 한 인격체로서 도태되지 않는, 진실로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1.
강원문학 발표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