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착각의 종류

지소현 승인 2021-10-26 12:07:38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착각은 자유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능하면 그 자유는 누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복잡한 세상사에서 사실과는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으니까.


얼마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다
. 후진으로 차를 세우고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차가 앞으로 스르르 밀려가고 있었다. 급발진 비슷한 오작동인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였다. 옆 차가 천천히 앞으로 진입하고 있었을 뿐 내 차는 정지상태 아닌가. 즉 반대로 움직이는 상대방이 곁눈에 비쳐서 일어난 착시였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났다. 이러한 현상은 박스형 자동세차기 안에서도 종종 있었다. 커다란 걸레가 뒤로 쓸려가면 내 차가 앞으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했었다. 이처럼 사실과는 정반대인 착각들!


나는 그것이 몸 안에 있음도 체험했다
. 십 년 전 오른쪽 엉덩이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했었다. 열 살 때 결핵성관절염을 앓았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뼈가 삭아 없어졌다. 그래서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6센티 가량 짧았다. 짝짝인 두 다리는 심하게 절뚝거렸고 어깨도 기울어진 채로 사십 년 가까이 살았다. 그 자세는 허리와 등뼈 통증을 불러 왔고 점차 곳곳이 쑤셨다. 견디다 못해 인공관절 수술을 했지만 정상 사이즈 관절을 끼우자 예기치 못한 고통이 찾아왔다. 다리가 길어지니 발바닥에 두꺼운 백과사전이 붙어 있는 듯한 묵직한 이물감이 들었다. 일어설 때마다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분명 평평한 길인데도 오른쪽 다리는 인도 블럭을 딛고 있는 듯한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뇌의 오류였다. 수십 년 동안 인식해 온 사이즈와 무게감을 미처 다르게 수정하지 못한 뇌가 나를 괴롭혔다. 그 착각은 목발로 걷고 다리를 구부리는 재활 치료보다 더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


그때 재활병원에서 만난 의족
(義足) 환자가 새 힘을 주었다. 사고로 왼쪽 다리 무릎 밑을 잃은 그는 두 다리가 있는 것만도 감사하라면서 말했다. “절단 수술 후 침대에서 내려올 때 사라진 다리가 있는 듯한 착각에 허공을 디뎌 나뒹굴었지요. 잠결에 발등이 가려워 긁으면 살갗이 아닌 이불이 잡혔고요...”


그렇지만 의족을 딛고 걸음마 훈련을 열심히 하는 의욕은 대단했다
. 인공관절이라도 끼울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소중한가. 나도 새로운 각오로 이런저런 과정을 견뎌냈다. 6개월 남짓 지나자 서서히 발바닥 이물감이 사라졌다. 그런데 걷는 모습이 남들과 비슷해지자 미처 몰랐던 또 다른 것이 보였다. 몸의 기울기만큼 비뚤어져 있었던 내 마음이었다. 마치 환경에 비친 착각처럼 말이다. 홀로 기르는 금쪽같은 아들이 엄마를 창피해할까 봐 학교에도 자주 가지 않았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면회도 가지 않았다. 나는 누가 뭐라든 아들에게는 하늘 아래 하나뿐인 엄마였던 것을 어찌 몰랐을까.

 

착각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지금, 감각과 이성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디선가 본 지식인데 학자들은 뇌에 공감각 정보가 있으며 이는 감각 정보, 시각정보가 기묘하게 혼합되어 존재한다고 했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이 습관화된 통로로 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까지 세세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남은 인생 착각 없이 살고 싶다. 빈도가 잦아지는 건망증과 38로 보이기도 하는, 흐린 정신과 시력으로 이러한 다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느껴지는 대로 말하는, 황색 선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늙은이 모습은 면하지 않을까 싶다.


2021
년 강원문단 발표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