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6월의 푸른 멍

지소현 승인 2021-11-02 11:02:53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내게 6월은 푸른 눈물이 흠뻑 고인 멍 자국이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자취조차 희미한 6.25 전쟁 상흔이 되살아나서다. 물론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상처를 보았다.


나의 시아버님은
6.25 전쟁 당시 자유를 찾아 월남한 평양분이셨다. 살아 계신다면 100세가 훨씬 넘었고, 내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치매 환자셨는데 통일 소식이 나올지 몰라하시면서 언제나 소형 라디오를 안고 계셨다. 방금 끝낸 식사도 까맣게 잊을 만큼 쇠락한 머릿속에 북한에 대한 기억은 생생했다. 친정 부모님에게서 피난 시절 어려웠던 이야기만 들었던지라 그런 시아버님이 문화가 다른 외국인 같았다.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을 극도로 미워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평양 식구 생각뿐이네요. 혈혈단신 당신 만나 고생한 나는 안중에도 없나요?” 껍데기와 살았다고 한탄하는 모습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공감 안가는 두 분 사이에서 난처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시아버님이 생을 마감하셨다.


마치 기도하듯이 두 손을 맞대고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계신 시아버님
! 머리맡에는 물잔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지막 호흡을 감당하면서 간절하게 통일을 기원하신 것인지.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족상잔이 낳은 절대적 상처!


그 같은 이야기는 또 있다
. 이십여 년 전 아는 어르신이 들려준 강원도 어느 산골 여인 사연이다. 6.25 전쟁 당시 십 대 후반이던 그 여인은 어느 날 운명의 사건을 겪게 되었다. 홀로 집에 있을 때 군인 한 사람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했다.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이 움직인 여인은 찬밥을 차려 주었다. 그러자 허기를 면한 군인은 여인과 짧은 사랑까지 나누었다. 그리고 군복의 명찰을 떼어 주면서 내가 살아 있으면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여인의 몸에는 거짓말 같은 변화가 생겼다. 배가 서서히 불러온 것이다. 불가항력적 환경에서 아들을 낳았다. 생사가 오가는 난리 통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것쯤이야 사람들에게 돌 맞을 만한 흉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총성이 멈췄다. 여인은 온다는 군인을 기다리면서 나이 들어갔다. 마치 바람에 날아온 민들레 씨앗 같은 아들을 기르면서. 그 아들이 20대가 되었을 때다. 모자의 사연을 알고 있던 한 공직자가 명찰을 근거로 군인의 생사를 추적했다. 덕분에 놀라운 현실을 맞이했다. 서울에서 군인의 부모라는 노부부가 여인을 찾아 왔다. 여인이 기다리던 군인이 전사했다는 슬픈 소식을 안고서다. 노부부는 청춘에 세상을 떠나보낸 자식의 혈점인 그녀의 아들을 보자 통곡을 하면서 여인에게 고마움의 큰절까지 했다고 한다. 마치 먼 옛날 도련님을 기다리던 전설 속 처녀 같은 여인의 삶! 그러한 전쟁의 상처는 삶의 곳곳에 화석처럼 남아있다.


성인이 된 내 아들을 얼굴에 시아버님이 보인다
. 시아버님 살아생전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북한 땅 혈육들도 내 아들과 닮았을까? 그리고 포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적처럼 태어난 여인의 아들도 궁금하다. 평범한 가장이 되어 아들딸 낳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을까?


나는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외칠 만큼 애국자가 아니다
. 하지만 남북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현실은 가슴 아리다. 6월이면 산후통처럼 살아나는 아픈 이야기들. 아마 내 생의 마지막 6월까지 이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