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다 잘 될 겁니다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11-09 11:00:11

 


112,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병원 정기진료일이다. 식전, 식후 채혈과 소변검사를 했다. 혈압, 심전도 검사, 안과에서 안압검사와 X-레이도 가슴 정면과 측면 2장을 찍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이렇게 검사를 한다. 한림대병원 본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심 계단엔 삼나무 숲과 멋진 한 그루 소나무 사진을 양면 벽 전체에 꽉 채워 붙여놔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시선이 닿는 높이엔 다 잘 될 겁니다란 글이 있다. 환자와 가족에게 긍정의 힘을 주려는 병원 당국의 배려가 느껴졌다. 세상 만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좋고, 나쁨이 나뉘고 행, 불행도 갈리지 않던가. 같은 상황에도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3개월 전에도 똑같은 글과 녹색숲 사진을 봤었건만 받는 감흥이 다른 것처럼 그렇다. 대체로 병원들의 인상은 단조롭고 삭막한 편이다. 대형병원들이 더 그렇다. 개인병원들은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환자의 긴장을 좀 풀어주는 분위기이다.

 

검사 결과는 모두 양호하게 나왔다. 당 수치가 약간 높게 나오긴 했지만 주의를 더 기울이라며 똑같은 처방전에 내 요구로 뇌 영양제가 추가됐다. 기억력이 근래 갑작스레 확 떨어져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오전에 한 일도 기억이 안나는 식이다. 무얼 가지러 갔는데 목적을 잃어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빈번해졌다. 약방에 갔더니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준단다. 담당의께 사정을 설명하니 받아준 것이다. 노화에서 오는 자연 퇴행도 있을 터이다. 그 점을 감안해도 심하게 여겨졌다. 병원에 가면 당연한 거지만 온통 아픈 사람들이다. 나이들어 어떤 약이든 한 가지 이상은 대부분 복용한다. 이런 덕분에 평균 수명이 훌쩍 늘어난 것이다. 100세 시대라는 게 실감난다. 환갑잔치가 늙음을 거부하며 저절로 없어진지도 꽤 됐다. 칠순, 팔순, 구순잔치도 집안 행사로 끝난다. 규모가 환갑만 훨씬 못하다.

 

3일은 한국화 수업이 있었다. 이제 다음 주 10일이 종강이다. 발표전을 한다기에 작품들을 했다.


난초
, 국화, 산수화, 묵죽, 소나무 등이다. 실제 전시는 안하고 도록을 만든다고 들었다. 코로나19 시국 탓이다. 그래도 180%, 276%, 백신 접종율을 넘기며 정부는 최근 완화조치를 내놨다.


집회 숫자를 늘리고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 그럼에도 확진자는 2천명을 넘어서며 계속 나오는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는 방역모범국임에도 그렇다
.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나라로는 접종율이 높고 확진자가 가장 적은 나라로 유일하다.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들은 천만 명 전, 후의 도시국가 들이다.


한국인 특유의 민족성이 잘 발휘된 것이다
. 전철 프렛폼에 사람이 빠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전동차를 밀어 구해내는 건 어느 나라도 없다. 화물차에서 화물이 떨어져 길거리에 흩어지면 행인들이 모여들어 수습을 해준다. 연관도 없고,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이다. 남의 어려움을 그냥 못본다.

 

7일이 입동이다. 가을은 끝난다. 이번 겨울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 화실에서 나게 된다. 전기 판넬이 설치되어 있는 난방구조다. 그것으로 될지,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모른다. 경험을 해봐야 알겠다. 구상하고 있는 작품들이 잘 나오길 기도하는 심정이다. 우안화풍의 발현은 가능한가.


산천화루에서 본격적인 작품을 반년이 넘도록 아직 못해봤다
. 제대로 집중하며 빠져들고 싶어진다.


표구까지 해서 걸어놓은 작품들에서 단점이 보이는 경험은 처음 해본다
. 화실 탓인가, 내 눈이 새롭게 열려감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더 나아지기 위한 변화로 여긴다.


용화산 자연휴양림 계곡과 구화곡에도 자주 발걸음을 할 터이다
. 산수와 매화, 소나무에 집중할 생각이다. 새롭고 완숙한 세계를 펼쳐내보려 한다. 이제부터라는 각오가 생긴다. 아직 의욕도 있다.


내가 해야할 몫도 있고
, 천지신명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보람된 겨울이 되도록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