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인연

지소현 승인 2021-11-09 11:01:46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몇 해 전 여름
, 지인에게서 2개월 된 아기고양이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아니 선물이라기보다는 얼떨결에 떠맡김을 받았다고 해야 옳다. 어떤 모임에서다. 지인이 자기네 고양이가 새끼를 6마리 낳았는데 어디든 분양해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마침 적적해서 강아지나 한 마리 길러 볼까 한다고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일찍 그가 아기고양이가 든 종이상자를 안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고양이는 난생처음인지라 강력히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자를 내려놓고 가버리는 것 아닌가.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상자를 열고 녀석을 본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한 뼘 남짓한 길이에 한주먹에 잡힐 정도로 가녀리다. 목소리도 아기같이 애처롭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퇴근할 때까지 책상 옆에 상자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 퇴근 무렵 보니 상자 속에 있어야 할 녀석이 사라졌다. 분명히 닫혀 있었고 녀석의 키 4배는 족히 되는 높이인데 어떻게 탈출이 가능했을까. 상상이 안 된다. 구석구석을 뒤지며 찾았다, 그때 벽과 맞닿은 커다란 책장 뒤에서 녀석의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납작 엎드려 10센티 정도의 책장 틈새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먹이로 유인하고 불러도 보고 막대기로 쑤셔도 보고 온갖 짓을 다 했으나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어미 품을 떠나 낯선 환경이 무서운가 보다.


할 수 없이 그냥 버려둔 채 돌아왔다
. 하지만 녀석이 걱정돼 참을 수가 없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벌떡 일어나 아들을 앞세우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불을 밝히면 스스로 걸어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야옹야옹 소리만 낼 뿐이다. 아들과 한 시간이 넘도록 애를 썼으나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녀석 걱정에 서둘러 사무실에 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 살아 있구나. 배가 얼마나 고플까. 탈진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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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라서 출동할 수 없단다. 잠시 후 출근한 직원들과 온갖 방법을 강구했으나 역시 소용이 없다. 그때 친구 남편이 생각났다. 그분이 한걸음에 달려와 드라이버로 책장을 분해해 들어내고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녀석을 꺼내는 것 아닌가. ! 정말 다행이고 하늘만큼 고맙다. 어떤 문제가 사람에 따라 어렵기도 하고 아주 쉬울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웃음도 났다.


이렇게 만남부터 속을 태운 녀석의 이름을 고양이니까 그냥 묘
이라고 지었다. 모든 것이 정말 신기하고 귀엽다. 대소변을 훈련 과정 없이 가리고 먹이도 아무리 많이 주어도 과식하지 않는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돌고 키의 몇 배나 되는 소파에 뛰어오르고 움직이는 벌레라도 보면 날쌔게 몸을 날린다. 그리고 불러도 자기 귀찮으면 들은 체도 않는 도도함이 매력적이다. 아들은 녀석의 집, 장난감, 간식 등을 사 나르며 동생이라도 생긴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런데 얼마 전 녀석을 더욱 사랑하게 된 사연이 생겼다.


예방주사를 맞히려고 동물병원을 다녀온 아들이 말했다
. 건강 상태는 좋으나 꼬리가 부러진 채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항상 녀석의 꼬리는 중간쯤이 30도 각도로 휘어져 있었다. 책장 틈새에서 용을 썼던 일이 생각났고 처음 봤을 때부터 꺾여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가슴 저리다. 부러진 부위가 아물 때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한쪽 다리가 성치 못한 내 모습이 보인다
. ‘그래, 그래. 묘야! 넌 조금 불편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고양이야. 헤어지는 날까지 먹여주고 사랑해 줄게. 너와 나는 같은 운명의 인연이니까.’

 

2015년 강원수필문학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