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제사

지소현 승인 2021-11-16 10:42:44


 

지소현 본지 발행인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말거라.” 어린 시절 우리 뒷집 할머니가 손자에게 했다는 유언이다. 하도 며느리에게 끔찍한 구박을 받았기에 죽어서도 화해하고 싶지 않다는 뜻인 것 같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눈길 한번 마주친 적이 없다고 소문이 났다. 끼니는 대충 양은 쟁반에 받쳐서 들이밀고 심지어 밥그릇까지 씻어 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장날 사탕 알갱이라도 사 오면 아이들만 주고 연로한 시어머니에게는 구경도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허기진 시어머니가 이웃 친척 집에서 쌀을 얻어다 화롯불에 냄비 밥을 해 먹는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은 별식이라도 하면 할머니께 갖다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 며느리가 음식 가져온 사람 등 뒤에서 가자미 눈으로 흘겨보기 일쑤였다고 했다.


디어 할머니가 노환으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다
. 이제는 방에서 풍기는 악취가 온 동네 화제가 되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할머니가 서러운 세상을 떠났다. 굶어 죽었을 거라는 둥, 질식사했을 거라는 둥 추측이 난무했다. 그때 10살짜리 손자가 홀로 임종을 보았다. 아마도 손자와 할머니의 사랑은 은밀히 끈끈하게 이어져 온 건가보다. 손자는 할머니가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마라고 했다는 말을 철없이 퍼뜨렸다.


며느리는 장례식 날 갑자기 효부로 돌변했다
. 빈소 앞을 떠날 줄 모르고 마른 눈시울을 훔치며 슬프게 울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쳐서 그런가 보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증스럽다고 흉을 보았다. 그때 곡소리가 저승까지 들려야만 자손들에게 좋다고 주워들은 말을 직접 들먹이는 통에 진심이 드러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알록달록 기기묘묘한 무늬 상여를 타고 앞산 양지바른 곳을 향해 떠났다
. 이미 오래전 소문난 지관을 모셔다가 천하의 명당이라면서 잡아 놓은 터였다. 상여꾼들이 어허흠차 어허여...” 목소리를 돋우자 며느리도 상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새끼줄 두른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이고 삼베 치마허리에 두른 새끼줄도 비틀어 내렸다. 대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이고 아이고...”를 쓰러질 듯 토해냈다.


어디 가서 물어보니 노인네가 죽어야 집안이 풀린다고 하던데...” 평소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리고 미리 잡아 놓은 명당에 장례를 치르면 3년이 지나면 재산이 늘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자랑했었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시어머니가 그 터에 묻혀서 잘 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모질게 군 것일까.


그 후 제사 정성은 참으로 대단했다
. 전지전능한 혼령이 된 시어머니가 곧 가난을 물리쳐 줄 것이라는 믿음의 발로였다. 떡하니 벌어지게 차린 제사 음식을 얻어먹은 동네 사람들은 살아서 된장국도 제대로 안 준 주제에 무슨 진수성찬이야?”, “죽은 귀신이 어디 조기 한 점이라도 먹든가?”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점잖은 동네 어르신은 제사라는 것은 혈육의 정을 기리는 효심에서 출발해야지, 허례허식이 무슨 소용이야.” 가르치기도 했다.

3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믿음대로 해마다 풍년이 들어 가산이 늘고 갑자기 자식들 성적이 오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산 중턱에서 주야장천 며느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할머니 역시 앙갚음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잔디가 정갈하게 자란 봉분 주변에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든, 낙엽이 쌓이든 고즈넉할 뿐이었다.


한동안 관심을 끌던 봉제사도 서서히 시들해져 갔다
.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저 그럴 것도 없이 사는 중년이 된 손자가 기일만 잊지 않고 챙긴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떠도는지는 모르지만. (2000문학마을신인상 수상작품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