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추월선생 묘소 참배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12-07 14:05:45

 


1129일 낮 12시쯤, 한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집에 있는지 화실인지를 물었다.


집에서 아점을 먹기 전이라 차리던 중이었다
. 오후 2시경 차를 가지고 태우러 왔다.


삼한골 국립숲체원 안에 있는 추월 남옥
[秋月 南玉]선생 묘소 참배를 가자는 거였다.


지난 주에 날짜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 이번 주 중에 가보자는 의견은 나눴었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 기상 예보에 그 후 강추위가 몰려올거라 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온도 푸근해 미룰 일이 아니다. 걸어서 가긴 조금 멀지만 삼한골도 발산리에 속한다. 또 차 한 대엔 국악인 소선생과 북치는 제자와 우두동에 산다는 관심깊은 젊은이가 타고 따라왔다. 이 친구가 등산용 스킥을 가져와 묘까지 올라가고 내려올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아니면 엄청 더 힘들었을 터이다
. 일단 길이 전혀없었고 생각보다 휠씬 가파랐고 두툼히 쌓인 낙엽이 미끄럽게 해서 산을 오르기가 좀 벅찼었다. 마음은 아닌데 몸이 안따라준다.

 

추월 남옥[1722~1770]선생은 조선후기 영조시대 인물로 신북읍 발산리 출신이다.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11개월을 체류했고, 일관기[日觀記], 일관창수[日觀唱酬], 일관시초[日觀詩草]를 남겼으며 매사오영[梅社五詠]의 일원으로 매화시 40수가 있다. 한박사가 추월선생의 매화시를 연구,논술해 박사학위 받았다. 지난 달 뿌리전에 출품한 16점의 매화도를 전시장에서 본 후 나를 찾아왔었다. 강촌의 후배이기도 하다. 매화시를 가지고 전시회를 하고 싶다며 내 의향을 물었다. 50여년의 화필생애에 수많은 전시회가 있었지만 매화도를 이번처럼 집중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어쩌다 한 점씩 내놨지만 무반응이었다. 74년 묵매로 국전에 입선한 후 몇 년 간은 오로지 매화를 참 많이도 그렸었다.


수십 년 간 부탁받은 작품을 즉석에서 그려주는 건 거의 다 매화였다
. 산수화도 빛을 못보고 소나무를 그리며 쉽게 소나무작가로 자리매김됐다. 내게 매화는 운명같은 소재건만 그랬다.

 

추월선생과의 늦은 인연을 만나려고 긴 세월을 매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건 아닌가 싶어진다.


매화로 국전 입선 이후 모든 공모전에서 산수화로 평가를 받았었다
. 20년 이상 산수화에 전념했어도 주목받지 못하다가 소나무를 손대면서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의도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로서 위상은 산수화로 다져졌고 그 바탕위에 소나무가 주목을 끌 수 있었을 터이다. 언젠가는 매화도 만으로 작품전을 가지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아왔다.


그 때가 드디어 온 모양이다
. 준비는 몇 년 전부터 해왔다. 광양매화마을을 개화 시기에 두 차례 다녀오고 김해공고의 와룡매도 스케치를 해놨다. 우안 매화의 특징이라 할 유형의 단초도 열렸다. 딱히 의도했던 것이 아님에도 풀려나왔다. 마침 내년이 73년 묵촌회 입문부터 따지자면 화업 50년이 된다. 매화도만 가지고 개인전을 가지면 그 의미는 깊어진다. 갈고 닦은 기량이 모두 담길 것이다. 매화도에 전념하기 전 추월선생 묘소를 참배한 건 각오를 새롭게 함이다.

 

참배를 마치고 묘 앞에서 소선생이 창을 했다. 봉분은 손이 안가 거의 평토가 되어있지만 망부석과 상석은 훌륭하다. 긴 세월 알아주는 사람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을 것인가. 소선생의 구성진 소리에 흐믓해 하실 모습이 그려졌다. 당신이 남긴 시가 이렇게 사람을 불러모았다.


예술의 힘일 터이다
. 숲체원 맞이관 왼쪽 산 능선을 타면 매봉 중턱에 묘가 있다. 추월선생 선양회를 만들어 봉토도 하고 묘까지 오르는 길도 만들어야 한다. 숲체원 광장과 봉의산 소양정, 소양댐 등에 시비도 세웠으면 싶다. 한박사에 의하면 남긴 시가 2천여 수란다. 신북읍에서 출생까지 있다. 산막골에서 갑자기 시내 교외로 나와 발산리에 터 잡고 화실까지 산천리로 옮긴 후 이런 인연이 생겼다.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하필이면 또 매화를 주제로 시와 그림의 이어짐이라니 생각할수록 탄성이 나온다. 겨우내 추월선생의 매화시와 시를 담아낼 매화 그림에 푹 빠져 지내겠다. 2백년이 훌쩍 넘는 시공을 뛰어넘은 만남이자 인연이다. 내 화업에도 특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