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트로트 시대, 나의 덕후기

지소현 승인 2021-12-07 14:23:53


 

지소현 본지 발행인/수필가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 강원장애인체육회 이사

) 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전문강사 ) 강원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근간에 들어 트로트가 대세다
. 나는 평소 트로트를 듣지 않는다. 꺾는 멜로디와 직설적인 가사가 취향에 맞지 않아서다. 그런데 201912월 즈음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앳된 청년의 신라의 달밤노래를 들었다. 청명한 음색으로 기교 없이 뽑아내는 가락이 내가 아는 신라의 달밤과 달랐다. ‘도대체 누구지?’ 때마침 대통령보다 유명한 트로트 여가수가 화제였기에 호기심이 가중됐다. 연예 기사를 검색했다.


전통가요 지킴이라는 타이틀을 단 그는 가요사를 모조리 읊어대는 대견한 강원도 청년이었다
.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고사성어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던가. 그가 부른 근대 가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성장 스토리도 나를 사로잡았다. 세 살부터 아홉 살까지 농사짓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선천적 하체 장애로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 네 차례 대수술을 받고 누워 지냈다는 사연, 12살 때 우연히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고백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뚝심이 소중했다. 실제로 가수가 되어 소속사를 통해 학업의 기회를 얻자 음악이 아닌 방송문예창작과를 선택했다니 얼마나 감자바위 체질인가.


망설임 없이 팬카페에 가입해 응원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주변에 카페 가입을 권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만나면 우리 강원도 인재를 키워 주세요라고 밑도 끝도 없는 부탁을 해댔다. 과거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직업적으로 사례관리를 할 때도 이처럼 열을 내지는 않았었다. 즉 먹고사는 일보다 더 마음을 쓴 것이다.


시쳇말로 덕질이었다
. 나날이 가속도가 붙어 제동 걸리지 않는 자발적 노예의 세계! 음원사이트에 가입해 24시간 그의 노래를 스트리밍하면서 타 가수들과의 순위를 체크했다. 그리고 한 시간마다 공식 팬카페 응원 하트를 클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운전 중 신호등에 멈춰서서 휴대폰을 열고 하트를 쏘고, 주일 예배 중에도 몰래 하트를 눌렀다. 그 원동력은 모 방송국 오디션 트로트 가수들이 열광을 받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뒤질세라 조급했기 때문이다. 열렬한 경쟁심은 지갑도 열게 했다.


그가 광고하는 유산균 쌀과 비락식혜를 무조건 샀다
. 쌀이 묵어있고 식혜는 입에도 대지 않으면서... 랜선 장터에 출연했을 때 대추와 사과도 샀으며 거금을 들여 서울 단독 콘서트장에도 갔었다. 해박한 지식과 실력, 고향 어르신들이 떠오르는 특유의 억양이 정다워 눈물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 사랑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코드가 맞아서 발생한 집착증일까? 1만여 명의 공식 카페 멤버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평범한 주부, 예술인, 공직자, 사업가 등등... 해외 교포도 수십 명에 달했다. 그 뜨거운 집단에서 나의 승부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음원사이트 수많은 팬 중 서열 135번째까지 올랐으니까.


그런데 덕질
1년 만인 지난 겨울부터다. 서서히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호기심에 첫 장을 열고 단숨에 읽어 낸 책처럼 울림만 남아 버렸다. 마치 유행 따라 멋을 부린 젊은 날처럼 늙음의 초입에서 뿜어낸 덕질 2020! 돌아보니 후회는 없다. 이해 관계없이 누군가가 성공하기를 바랐던 간절함! 아직은 내 마음이 순수하다는 증거 아닌지. 이제 그는 스타로서 고향인 원주 관광 홍보대사가 되었다. 2021년 마지막 달을 장식이라도 하듯이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금의환향 단독콘서트도 연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새삼 뿌듯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