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새해를 맞으며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1-11 11:16:49

 


벌써 새해를 맞이한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새해라고 달리 해맞이를 한다거나 별다른 의식이 있는 건 아니다. 보통의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일어나면 맨 처음 하는 일이 커피 한 잔 마시고 사과 하나를 깎아 먹는 것인데 새해 첫 날 먹은 사과 씨방 부분이 썩었다기보다 시커먼 혹 같은 게 있어 좀 그랬다.


그 전과 그 후에도 그런 사과는 없었으니까
. 사과 살은 씨방만 빼곤 다 잘 먹었다.


그리고 아점을 먹기 위해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왔는데 그 중 하나의 뚜껑을 열다 떨어져 깨졌다
. 반찬은 단 하나도 버림 없이 다른 용기에 옮기고 깨진 유리조각을 조심히 주워서 버렸다. 식사 후 화장실에 가다 문 밖 벽에 세워놓은 쓰레받기를 밟아 옆면이 조금 부서졌다.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정도다. 세 가지가 이어졌고 소소하지만 흔치않은 일이 새해 첫 날에 생겼다. 매사에 좀더 조심하자고 맘에 새겼다.

 

둘째 날은 오후에 화실에 올라가 카카오톡으로 받은 새해 덕담에 답장을 보내며 정을 나눴다. 흔히 사용하는 의례적인 글로 다는 것이 아니라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대작을 하나 해야 하는데 실마리가 풀리질 않는다
. 지난달에 시작이라도 해놓자 마음먹었건만 결국 손을 못 대고 해를 넘겼다. 언제까지라는 마감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더욱 그런 면도 있다. 선암사 와송을 다룰 건데 이 소재가 여러모로 까다롭다. 매화도 곁들이려 한다. 뿌리 쪽엔 작은 못도 있어 구성이 특이해서다. 몇 년 전 30호 크기로 그려봤는데 지금 보면 부끄러울 지경으로 묘사가 부실하다. 이걸 해내야 바로 조선후기 영조시대의 인물인 남옥선생이 남긴 40수의 매화시를 주제로 매화도를 치기위해 전력투구할 참이다. 시가 오언율시와 칠언율시로 길어서 그림에 모두 담기엔 무리지 싶다.


번역까지 곁들일 생각이기에 더 그렇다
. 단일 소재라 다양한 표현도 고민해야 한다.

 

74년 제23회 국전에 묵매로 입선을 하며 화단에 입문했고 때문에 무수히 많이 그렸다.


그럼에도 정작 전시회에는 거의 내놓지 않았다
. 더러 발표를 해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 후 백양회공모전을 비롯해 강원도전
,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에서 모두 산수화로 인정받으며 산수화에 주력한 탓도 있다. 73년 초에 소헌선생님 문하에 입문했으니 올해가 화필 잡은 지 50년이 된다. 매화만 가지고 전시회를 하고 싶은 소망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마음과는 달리 좀 체로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추월 남옥선생을 기다려온 듯하다. 작년 뿌리전에 16점의 매화도를 출품하며 인연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 숫자를 출품한 일이 없었다. 덕분에 시선을 끌며 기회가 왔다. 무심히 초당 마루에서 습관대로 소품을 하며 홍매도 연작이 나왔다. 의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뜻깊은 기회가 열린 것이다.


축적된 기량을 맘껏 뿜어낼 터이다
. 광양매화마을이며 김해 와룡매며 보고 스케치도 해놨다.

 

셋째, 넷째 날은 초당에서 꼼짝않고 쉬었다. 특별히 한 게 없음에도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다.


다섯째 날
, 오후에 달샘의 제의로 한계령을 넘어가 청간정을 들렸으나 공사가 올 6월까지 라는 안내문이 있고 출입금지다. 벌써 세 번째 실망이다. 거진항에서 저녁을 먹고 파도가 힘찬 등대쪽 해안을 돌아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미세먼지인가 안개인지 때문에 수평선은커녕 해변가 바다도 제대로 안보이는 드라이브였다. 그래도 가슴속의 답답함이 적잖이 가셨다. 광치령을 넘어가기 전 차를 세우고 연리송을 만났다. 두 그루가 붙은 연리목인데 한 그루가 고사한 상태여서 아름답던 수형이 헝클어져 마음이 아팠다. 명당자리에 있어도 관심과 애정을 못 받은 노송이다. 그점이 늘 아쉽고 안타까웠다. 나무도 팔자가 있는가.


산 속에 숨듯 있어도 명성이 큰 나무도 있다
. 정선의 고사한 몰운대 노송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여섯 째 날, 달샘과 양수리 수종사에 오르고, 마재마을 여유당에 들려 다산선생 묘소를 참배.


먼 곳도 아니건만 도대체 몇 년 만에 와본 것인가
. 수종사 경내에 새 석불이 들어섰고 전망은 여전히 수려하고 호쾌하다. 날이 흐려 수묵화다. 찻집은 영업을 안해 아쉬웠다. 전망을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기대를 가졌었다. 한적함을 깨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있었다. 여유당 경내엔 다섯 손가락도 못채울 사람뿐이다. 선생께 홀로 재배를 올렸다. 나외엔 인적기도 없었다. 좋은 작품하도록 힘을 주소서하고 기원했다. 묘소의 현묘한 분위기가 깊게 휘감겨와 한참을 머물렀다.


묘소를 둘러싼 소나무들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 다산선생이 부인의 헌치마에 그린 매조도가 있다. 곡운구곡을 화폭에 담고자 화가를 수배해 놨으나 출발을 앞두고 배탈이 나는 바람에 실현이 안됐다. 미술계의 큰 손실이자 무명화가의 비애다. 다산선생의 안목에 든 화가였으니 미술사에 남을 작품이 나왔을 터이다.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하늘이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