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임인년 첫날에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2-08 10:49:10

 


일기 한 편을 더 쓰고서 임인년 설날을 맞으려 했는데 결국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고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 단조로운 생활이지만 결코 글 소재가 부족해서는 아니다. 와송도 그릴 종이를 화판에 붙여놓고 두 달을 끙끙대며 허송한 것처럼 원인을 못찾고 있다. 어제는 종일 콧물이 나왔는데 낮엔 가벼운 증상이 밤이 될수록 심해져 결국 약을 찾아 복용했는데 한 시간 쯤 지나자 약효가 작용해 거의 그친 정도까지 됐었다. 근래들어 가장 일찍 자리에 누웠고, 새벽 1시 반경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어 오전 9시 넘어서 눈이 떠졌다. 일어나 마당을 보니 눈이 제법 쌓였고 엉성하게 내리는 중이다. 기온은 그리 춥지 않았다. 마당의 눈을 쓸며 대문 밖으로 나가 집 앞 길을 보니 차바퀴 닿은 곳들은 녹아있다. 오랜만에 펼쳐진 설경은 볼 만 했다.

 

10시경 형한테 전화가 왔고 차례는 지냈으니 떡국 먹으러 오란다. 편의점까지 택시타러 걸어나갔었지만 오가는 택시조차 보기 어려웠다. 결국 포기하고 귀가했다. 큰 길엔 눈들이 모두 녹아있다. 눈도 그쳤다. 11시 넘겨 형님 부부와 내 대신 차례에 참여한 아들이 함께 초당으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아들이 세배를 하고 봉투를 하나 줬다. 형님도 세뱃돈을 주기만 하다가 평생 처음 받아봤다며 흐믓해 했다. 나 또한 얼떨떨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한테는 세배드리고 용돈을 드려보긴 했다
. 이런 변화가 없던 일이니 아주 생소하다.


생각지도 않았었기에 더욱 그랬다
. 어제 밤 형님댁에 와서 자고 차례를 지내자는 형님의 권유가 있었으나 규칙적인 생활이 아닌데다 담배피기 불편한 환경인지라 사양했었다.

 

설날에도 콧물은 심하진 않았으나 수시로 풀어내야 했다. 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증상은 전혀 없이 오직 콧물만 나왔다. 형님네서 가져온 음식중에 떡만 몇 조각 먹고 아점을 대신했고 오후에 온 달샘이 저녁에 떡만둣국을 만들어 같이 먹었다. 단조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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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중 화실에 올라가면 더러 서간지에 홍매도를 치거나 대부분은 한국미술··일의 역대 대표작이 수록된 화집 등을 모처럼 살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기만 힘썼지 화집들엔 손길이 거의 가지 않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며 훌륭한 자료들을 사장 시켜온 것이다. 공부 자료로 활용을 거의 못해봤다. 어째서 그쪽으론 생각이 미치질 못했을까.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자연으로부터 직접 준법이라든가 다양한 흡수를 해오긴 했었다. 돌아보니 공부의 방향에 관한 고민이 많이 모자랐지 싶다.

 

젊은 시절엔 자료가 없었다. 화집들을 구입해서 살펴봤을 뿐 공부와 연결시킬줄 몰랐다.


개자원화보를 바탕으로 해서 오로지 자연만 탐구하느라 여념을 가질 수 없었다
. 그 방식이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에서 평가를 받으며 고전 공부에 깊이 파고 들어갈 계기를 못 만났다. 개인전을 부지런히 가졌고 문하생들을 지도하느라 공부에는 미흡했다. 환경이 내 학습을 가로막기도 했다. 소헌선생님한테 습득한 필법과 초기엔 짧지만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 화법에 심취되긴 했었다. 남천선생님한테 고전의 산수화를 묘사하는 숙제를 짧게 해봤다. 돌아보면 참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력투구하며 숨가빴다. 조언해줄 선배나 친구, 후배도 못 가졌다. 거의 평생 동안 외롭고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 그게 내 운명이었을 터이다.

 

최근에 다음 뉴스에서 조병수 건축가의 인터뷰를 보다가 막의 미학을 만났다. ‘막걸리’, ‘막춤’, ‘막사발등을 예로 들며 거칠음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을 찾아낸다. 내게 주어진 화두로 여겨진다. 그가 말하는 은 기술의 극치를 가진 사람만이 순간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깝다. 조선시대 막사발을 만들던 도공은 하루에 2천여 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청자의 섬세함과 백자의 고결함과 다른 막사발의 미학은 짧은 시간 안에 거칠게 뽑아 올린 도공의 손길을 타고 찰라에 나온다. 머리를 굴리기 전에 손끝에서 끝나는 순간의 미학이라고 했다. “한국 문화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생동감과 유머까지 아우르는 흥이에요. 한국 특유의 흥겨움이 스며든 의 문화는 이제 세계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적당함의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화에도 충분히 받아들일 미학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