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낸 “코로나 19시대”
지소현(수필가/본지 대표)

지소현 승인 2022-02-15 11:50:39

완전무장한 장수보다 더 공포감을 조장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보이지 않는 전쟁 중이다. 이 제나 저 제나 종식을 기다리며 보낸 나날이 햇수로 3년째 접어들었으니 지루하다. 온갖 통제에 갇힌 일상은 답답함을 넘어 왠지 모를 슬픔까지 몰고 온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날들! 그 속에서 장애인복지 실천현장 극명한 빛과 그림자를 보았다. 우선 빛은 어려운 가운데도 이어지는 이웃들의 사랑이었고 그림자는 예상치 못한 재난 시, 장애라는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 부재였다. 전 국민적인 혼란이니 어찌 탓하리오 만은, 장애인들의 시간은 백지 위에 무작정 휘갈긴 먹물의 흔적처럼 어지러웠다.


2020
년 초, 코로나가19 바이러스가 처음 대한민국에 상륙했을 때다. 몇 해 전 떠들썩했던 메르스처럼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겠지 했다. 그래서 면역력만 강하면 문제없다는 낭설에 기대어 태평했다. 하지만 봄날에 접어들자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TV
에서는 연일 실시간으로 감염자 수를 알렸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는 설명까지 곁들이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날마다 드나드는 엘리베이터가 께름칙했다. 슬그머니 폐부 속으로 침투할지도 모르는 바이러스! 허공의 괴물을 피해 방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화생방전, 세균전, 원자폭탄 파괴력이 이런 걸까. 보이지 않는 적이 보이는 적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촉각을 곤두세울 때 마스크로 호흡기를 가리는 것만이 최고의 백신이라고 전해졌다
. 하찮게 여겨 온 마스크가 생명의 보호막이라는 진단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 약국 앞에는 새벽부터 인파가 길게 길게 줄을 이었다. 마치 6.25 전쟁 흑백 영화 속 식량 배급 장면처럼 말이다. 배고픔 때문에 생겨났던 줄이 이제는 전염병 때문에 생겨나다니, 목숨 줄을 잇기 위한 줄서기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그 절체절명 속에서 남다른 서글픔에 젖은 사람들이 있었다
. 어깨를 부딪치며 마스크 구입 무리 속에 끼어들 엄두조차 못 내는 장애인들이었다. 시각 장애인들이 한탄하고 휠체어로 이동하는 중증장애인들이 한숨을 토해냈다. 계단만 있는 안전이라는 건물 위를 어두움을 더듬으며 어찌 오를 수 있단 말인가.


평소 신뢰 관계가 있던 봉사자들이 아침 일찍 대신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다 주기 시작했다
. 신분확인을 위한 장애인 복지카드를 전달받아 들고서. 서너 명의 시각장애인과 친분이 있던 어떤 봉사자는 매일 새벽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손을 잡고 걷는 일에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을까.


전대미문의 마스크
5부제라는 제도가 발표되고 그나마 오래지 않아 품귀 현상까지 일었다. 인터넷에는 휴지와 키친타올로 일회성 마스크를 만드는 진풍경이 소개되기도 했다. 어떤 지방자치단체에는 장애인직업 재활 시설인, 작업장에 마스크 생산시설을 갖추고 소외계층에게 무료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노동력은 지역 사회 봉사단이었다. 그리고 장애인복지 현장 사회복지사들도 긴장했다. 연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건강을 체크하고 현관 밖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필품을 전달하고 재가 장애인들에게 휴대폰 사용법, 줌 활용법을 교육하고... 저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쏟아냈고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나마 멈추지 않는 관심과 사랑이 빛이 있어 아직은 견딜 수 있지 않은가.


어려운 일상 블랙박스 속에는 짙은 그림자도 있다
. 정부의 강력한 시설폐쇄 방침이 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신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발달장애인 어머니 소식을 접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자녀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감을 견디지 못해 선택한 길이라고 했다.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고통을 분담해주던 제도적 보호장치가 무너진 곳에 닥친 불행이다. 활동보조사에 의지해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중증장애인도 마찬가지였다. 서비스가 간헐적으로 끊긴 어느 한 여름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땀에 젖어 누워있을 때 죽음의 공포를 만났다고 했다. 의식은 또렷한데 필요한 것을 스스로 취하지 못하는 결박상태, 가위에 눌린 상태 같았으리라. 정말이지 생명과 직결된 서비스의 멈춤은 전쟁터에 홀로 내팽개쳐진 부상자들을 떠오르게 했다.


실제로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례도 보았다
. 하필 그 시기에 뇌졸중으로 입원을 한 장애인복지 현장 인력이 있었다. 방역수칙에 가로막혀 가족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닥친 치명적 병마와 홀로 싸웠다. 혈육과 친지의 따듯한 격려가 강력한 효과를 지닌 약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예상보다 빠르게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고, 몇 개월 지난 어느 날 새벽 영원한 나라로 떠났다. 얼마나 황당하고 냉혹한 이별인가.

중증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도 소외감을 호소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가족, 봉사자, 후원자들과의 교류의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외부로 나가는 프로그램까지 중단되자 정서적 침체의 늪은 깊어졌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강력한 통제야말로 얼마나 큰 형별인가. 이는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민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되었을 때다.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던 청각언어 장애인들이 단절감을 호소했었다. 그나마 지금은 입이 보이는 투명한 마스크가 생산되어 다행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게 한 역병 사태!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국민 5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한다고 했다. 지금은 변이된 바이러스 공격까지 이어지니 더욱 늘어날지도 모른다. 혹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종식된다 해도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한다. 따라서 극명한 빛과 그림자 현상도 지속되리라. 그래서 간절히 소망한다. 인간만이 지닌 특성, 사랑이라는 빛이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을 만큼 창대해지기를 말이다. 그 밝음이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을 치료하고 새로운 희망을 자라게 하는 특효약이라 믿기 때문에...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지원 사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