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봄비는 내리고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3-15 11:44:45

 


 

어제, 그러니까 312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난 10여 일간 울진, 삼척 지방 산불진화에 전력을 다하면서도 끝이 안보이던 것이 자연의 힘으로 끝맺음이 됐다.


그뿐이랴 요 며칠 걸으며 땅을 보면 푸릇한 풀들이 제법 많이 보였고
, 이번 겨울은 눈이 별로 안와서 가물은 편이었는데 촉촉히 대지를 적셔주며 생명들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오늘도 내리다 쉬고
, 다시 내리며 봄비다운 부드러운 기세로 산야를 골고루 어루만져 주고 있는 중이다. 때맞춰 내리니 적시타라 할 것인가. 지금 오는 첫 봄비가 두루 고맙기만 하다. 지난 5일 읍사무소까지 걸어가 사전투표를 했고, 9일 본 투표가 있었다. 10일을 넘기며 개표를 보다가 일찍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니 기대가 무너지는 결과가 나와있었다. 승패는 0,7% 차이의 초 박빙이었다. 대선 사상 표 차이가 가장 적게 나왔다. 민심이 천심이라 하니 어쩔 것이냐.

 

어느 시인의 술회처럼 군인이 지배하는 나라에도 살아봤다. 사기꾼, 무능력자인 나라에도 살아봤다. 괜찮다. 안 죽었다. 검찰이 지배하는 나라에도 몇 년 살아보자. 어떤 나라가 되는지 경험해 살아보자. 어떤 범죄가 살고 어떤 범죄가 죽는지 지켜보자.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사용하는지 지켜보자.’라고 했다. 지금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천심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우려를 뛰어넘어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나가길 바랄뿐이다.


어쨌든 마음이 심란해 이틀 동안 화실에 안 갔다
. 붓잡을 기분이 아니었다. 어제 밤에 올라가서도 겨우 매화 한 점을 쳐봤고, 지난 스케치만 이것저것 들쳐보며 거친 필치들을 다듬었다. 와송도는 이제 매화를 어떻게 곁들이느냐의 과제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작품의 성패가 여기서 갈리게 된다. 좀체로 방법이 열리질 않는다. 시작은 좋았는데 중간 중간에 난제가 계속 생겨 애를 먹인다.

 

조금 전에 유튜브를 통해 고 법정스님을 여섯 차례 찾아가 영상으로 담은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불일암의 생활
, 강원도 산속 생활과 미국 윌든의 현장을 찾은 모습, 길상사, 성철스님을 법정스님이 인터뷰 한 것이 내용이다. 법정스님의 책은 꽤 여러 권을 가지고 있다. 월간 샘터에서 처음 연재글을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인사동 전시장에서 스친 적도 있다. 텅 빈 충만의 삶을 실천한 분이다. 무사 아우님과 땡님 생각이 요즘 자주 난다. 한창 나이에 어쩌자고 그리 빨리도 세상을 등졌나 싶다.


살아오며 생각이 가장 잘 통하던 두 사람이었다
. 늘 깨우침도 주었다. 식견들이 넓고 또한 깊었다.


정도 많이 들었다
. 내겐 과분할 정도로 고마운 인연이었다. 남은 생애에 이런 이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우연히 인터넷 매체에서 알게 됐었다. 갑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떴다. 집착이 없었다.


요즘들어 주책처럼 눈물이 자주 난다
. 얼마 전 아동용 프란다스의 개를 읽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뻔한 내용인데도 그랬다. TV를 보다가도 종종 그렇다. 슬픈 내용이 아님에도 눈물이 난다. 젊은 시절엔 정말 눈물이 많았다. 몰래 혼자 흘린 눈물로, 상처받거나 속상해서 그랬었다.


지금은 공감하거나 감동을 받아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내 생애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늘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아야 했었으니까. 늘 긴장하고 불안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내면을 누구한테도 보여준 적이 없다. 평생 숙명처럼 가지고 살아왔었다. 산막골 생활도 편안하지 않았다. 고정 수입이 없고 뒷받침이 없어 불안정한데 무슨 수단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남 보기엔 신선노름 같았을 것이나 가시방석이었다. 벽에 막히고 난관이 닥치면 엉뚱하게 무협지에 빠져들었다.


여기가 도피처였다
. 초능력이 넘나드는 이 세계엔 불가능이 없지 않은가. 역시 인터넷으로 알게 된 무협소설 작가가 무협지를 많이 산막골에 가져다 주기도 했었다. 생애의 고비마다 그래왔던 편이다.

 

욕심 없이 살아왔으나 오직 책엔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내 소유로 가장 많은 게 책이다. 체계도 없고 분야도 따질 필요가 없었다. 어느 분야든 책이면 다 좋았다. 집착에 가까웠다. 70년대 후반부터 월부책이 유행이었다. 월말이면 수금원이 줄을 이었다. 책 이외에 빠져들었던게 고전음악으로 씨디를 구입하고 듣는 게 가장 기뻤었다. 좋은 보청기 덕분에 평생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청력장애자의 음악감상이라니... 베토벤 전기를 읽으며 수없이 나오는 명곡의 이름들을 직접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다. 그 감동은 형언하기 어렵다. 청각장애 2급인 사람이다.


책과 음악외엔 무엇에도 빠져들지 않았다
. 하나 더 든다면 걷기이다. 오죽하면 유일한 소원이 전국을 도보로 일주하는 것이었을까. 시도조차 못하고 말았지만 유일한 아쉬움이다. 산막골에서의 초기 고통도 걷는 것으로 대부분 해소해냈다. 부귀리까지 왕복 10킬로를 아침, 저녁으로 매일 걸었으니까.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