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와송도를 끝내다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4-05 11:12:13

 


드디어 328일 깊은 밤에, 현곡시인께 받은 시를 화제로 써넣고 낙관까지 찍으며 선암사 와룡송도를 끝낼 수 있었다. 화제를 쓰며 초긴장 상태라 써놓고 보니 셋째 줄 자가 약간 기울어졌다. 어쩌면 누운 와송도이기에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나온 거란 생각도 든다.


크게 어색하지 않고 어울렸다
. 218일 시작해 3월 한 달을 와룡송도에 온통 기울인 시간이다.


내 능력 것 최선을 다했다
. ‘仙岩寺 소나무가/ 六百年을 누워서 기다리고 있네 // 꼿꼿하게 서있는 것만이 / 生涯 아니라고, // 木鐸도 없이 누워서 / 깊은 을 쌓고 있네이렇게 한자를 섞어서 사용했다. 29일 시인이 와서 봤고 연습했던 시 쓴 것중 두 점을 달래서 줬다.


표구사에서 와 작품을 가져갔다
. 배접해 판에 붙인 후 최종 손질을 할 터이다. 닥지가 거칠어 바탕에 접히고 구겨진 곳들은 선이 이어지지 않거나 거칠게 나온 것들을 다듬어야 한다.

 

옥천화방에서 산천화루로 이전해 완성한 첫 대작이다. 이 화실에서 대작을 많이 해야 한다.


벽에 걸어놓은 기존 작품들의 못 보던 결점이나 헛점이 드러나는 것이 특이한 공간이다
. 다양한 화실을 사용해 봤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다. 그런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올 거란 기대감이 든다. 빈틈과 부족함이 드러난 것들은 점차 보완해갈 생각으로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와룡송과 이전 소나무 작품들의 다름이다. 화실 현관과 안쪽 벽엔 부귀리 솔숲과 강릉 운계산 반송도가 걸려있는데 둘 다 140호 크기다. 소나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특히 반송도가 더 그렇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 와룡송도는 힘의 과시가 없으며 부드럽고 차분하다
. 그래서 유약한 것도 아니다. 의식하지 않았건만 이런 변화가 저절로 나왔다. 그려놓고 보니 비교가 됐다. 별관측소 김소장도 와서 보고 그 점을 지적했다. 좀 더 성숙해졌다 할 것인가. 좋은 징조로 여겨진다.

 

백매화를 곁들이는 적절한 공간을 찾기위한 고심도 일주일을 넘겨했었다. 와룡송이 좀체로 요지부동, 공간을 안 내줬다. 일반적인 순서라면 매화를 먼저 치고 그 뒤로 와송이 들어가야 하는데 와송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나니 꽉 막혀버렸다. 옹달샘도 그랬다. 매일 어울릴 법한 매화를 찾아 여러 장 스케치를 해봤지만 번번히 안 나왔다.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었다. 기다림은 내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 당하는 기간이었다. 견디는 것이 작업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그리고 열렸다.


와룡송 뿌리 쪽과 몸통
, 옹달샘과의 남아있는 공간에 매화가 들어 앉아 조화를 이루는 자리가 어렴풋 보이기 시작하고 점차 구체화가 된 후 붓을 댈 수 있었다. 이런 긴 고민은 처음 하는 체험이었다. 좋은 예감으로 와룡송과 옹달샘을 표현해 놓고 매화에서 제동이 걸린 시간이 근 열흘이었다. 난관을 넘기자 무난하게 완성까지 갈수 있었다. 현곡께 좋은 시를 받아 더 빛난다.

 

50여년 화필을 잡고 작품을 해오며 아직 만족한 작품을 못 내놨다. 이번 와룡송도 또한 흡족하지 않다. 다만 조금씩이라도 나아져 간다는 확인에 힘을 내왔다. 남은 생애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터이다. 천재형이 아닌 노력형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자만할 수 없고 방심도 안 된다.


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타고난 숙명이다
. 달게 받아들인다. 애쓰면 그만큼 나아지니까 다행 아닌가. 젊은 시절 객기를 부렸던 부끄러움도 더러 있었다. 더 많이는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들을 거쳤다. 깨달음의 이어짐 같은 느낌을 일정 시기마다 받았었다. 스승의 사사가 짧았고 선배와 후 배가 없는 건 늘 아쉬움이었다. 그림과 책 말고는 어디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외길만을 걸었다.


그럼에도 성취는 부족함뿐이다
. 이제부터라도 더욱 분발하며 채워나가야 하리라. 그런 다짐을 새삼스럽게 한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의욕은 아직 왕성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