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귀 빠진 날에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4-19 10:54:04

 


지난 47일이 귀 빠진 날이었다. 전후해서 생각지도 않던 일들이 이어졌다. 전날 6일에 달샘과 영주에 있는 전국 최대라는 매화분재원을 찾아갔었다. 실내의 분재들은 이미 2월에 개화 후 모두 새잎으로 덮혀있었다. 전지까지 해놔서 볼 것이 없다. 대략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실망까지는 안 했다. 만든 분의 후계자로서 분재원을 담당하는 젊은 분과 인사를 나누고 매화에 관한 이야길 나눴다. 밖엔 매화공원이 있어 여기서 바라던 것들을 만났다. 매화전문가의 손길이 간 것이라 수형이 다양하고 남달랐다. 확대된 분매로 보인다. 여긴 야외라 매화꽃이 절정기다. 40장 넘게 스마트폰으로 다니며 찍었다. 헛걸음은 아니었다. 이걸 소재와 바탕삼아 남옥선생 매화시를 소화해낼 터이다.


그럴 수 있겠다 싶어졌으니까
. 온실에 있는 분매들은 내가 바라던 형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개화시기에 마음 두지 않고 기다렸다가 제철에 와본 것이다. 그 선택은 옳았다. 가는 길에 순흥면사무소를 들렸다.

 

면사무소 경내에 있는 보호수만해도 즐비하다. 멋진 소나무도 여럿있다. 더구나 봉도각이 붙어있음에랴. 봉도각도 소나무와 고목들이 모두 범상하지 않다. 분매원으로 갔다가 나오는 길, 소수서원 솔밭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서원은 안 보고 솔바람만 만끽하고 나왔다. 왠지 예전보다 솔밭이 줄어든 듯 보였다. 면사무소, 분매원, 소수서원, 세 곳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다. 다만 분매원 들어가는 길목에 사과과수원이 있었는데 하도 나무들이 기이해서 나오며 자세히 본다고 지나쳤는데 분매원에서 지름길을 알려줘서 그리로 나오느라 국도로 나온 후에야 아차 싶었다. 다음엔 분매원 개화시기에 맞춰 올 때 챙겨 보자고 아쉬움을 달랬다. 영주지역은 유난히 고목들이 많이 남아있다. 부석사도 좋아하는 절 중 하나다.


속도로 단양휴게소 뒤 동산에 있는 신라비도 이번엔 안내판까지 살펴보고 다음을 기약했다
. 체력이 바닥이어서다. 벌써 세 번쩨 포기다. 들릴 때가 밤이라서, 또 시간이 없어서 였다. 이번엔 체력 때문이다.

 

돌아오며 홍천휴게소에서 와송도 주문자에게 전화를 했다. 완성됐으니 보시러 오라고 요청한거다. 7시 반경에야 부부가 왔다. 작품엔 만족하고 내가 제시한 것도 받아들이겠다더니 나가자 마자 바로 달샘한테 전화해 자신들이 정한게 있는데 그 이상은 안 된다고 통고를 받았다. 결국 내가 받아들일 수 없어 무산되었다. 이외로 마음은 담담했고 그분들 덕분에 대작을 건졌으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걸로 된 거다
. 개인집에 갇히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나 작품이나 다 인연이 있게 마련임을 안다. 동기부여를 해준 덕분에 한 겨울 몰입하며 모처럼 별일 없이 순탄하게 대작을 해냈다. 이젠 대작을 왕성하게 하던 젊음은 없다. 이런 계기가 아니면 대작하기가 쉽지않음을 안다. 무수히 그려온 소나무 중 가장 정성이 많이든 와송도다. 매화, 옹달샘과 와송이 어우러진 소재도 처음 다뤄봤다. 6월에 가질 매화전에 낼 작품으로도 새롭고 맞춤하다. 대작을 건진 것만으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럼 된 거다.

 

귀빠진 날을 알고 있던 아들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물었고 단골 민물횟집으로 정했다. 형님부부와 나, 아들까지 단촐한 자리다. 아들이 내 건강을 염려해 연기 안나고 니코친이 없는 담배를 선물로 줬고 봉투도 내게 건넸다. 점심을 맛있게 횟집에서 먹었다. 이날은 영웅시대 팬들이 달샘을 매개로 해서, 강진 마량에서 전복양식을 하는 분이 살아있는 '갯벌 참전복'을 택배로 보내왔고, 케이크 선물이 여러 개에, 둘이 식사를 하라고 돈을 입금시킨 경우까지 있어 가슴이 뭉쿨하며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달샘은 따로 긴팔 티 세벌과 청바지를 선물했다. 칠순잔치 한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전국구로 부터 받았다. 나는 만난 적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는 이들로 부터다. 달샘은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만들어 놓고 상경하느라 집에서 혼자 분주했었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이런 대접을 받는가 싶어진다. 그저 고맙고 겸허할 일이다. 시내로 나온 후부터 무슨 일이 생기든 화가 안 나고 마음이 여유로와 진걸 자각한다. 애써 노력한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