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5월, 솔꽃이 한창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5-10 12:44:49

 


금세 5월을 맞았고 벌써 오늘이 5일로 어린이 날이다. 오며 가며 보이는 소나무들은 새순이 왕성하게 솟고 솔꽃이 피어서 곱다. 소나무만 유난히 꽃이 꽃답지 않아서 노인들조차 소나무 꽃을 봤느냐 물으면 모른다.


송화
[松花]라고 부르면서도 그렇다. 꽃이란 개념보다는 효용성이 있는 꽃가루에 촛점이 대부분 맞춰져서다.


꿀이나 조청에 버무려 송화가루로 만든 다식
[茶食]이 대표적이다. 다식도 이젠 보기가 어렵다. 격식을 잘갖춘 차[] 관련 행사에서나 귀하게 만날 수 있다. 추석이나 설날엔 빠지지 않던 흔한 명절 먹거리였었다. 여러 재료를 사용했기에 송화 다식은 그 중 한 종류였을 뿐이다.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기억도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젠 맛보기는커녕 보기도 어렵다. 송화가루 자체가 구하기 쉽지 않은 귀물이 됐다. 솔꽃은 꽃잎도 없고 꽃술도 없이 꽃가루만 얇은 막에 통통히 담은 모듬체여서 일반 상식으론 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꽃이라기엔 특이한 모양세여서다. 꽃대접을 못 받는 유일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솔꽃이 한창이다.

 

살림집 수겸초당엔 방 앞쪽으로 마루가 있다. 자로 꺾어진 구조이다. 원 구조에 주인들이 여러번 바뀌며 누군가의 필요성으로 덧대어 만든 것이다. 이사 와서 짐이 풀어지며 어수선해지면 정리하기를 여러 차례였다.


그러다 다시 마루 공간들이 잡다한 것으로 채워지면서 현관부터 답답해졌다
. 안쪽 절반은 아예 손대기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인채 겨울을 보냈다. 집을 드나들며 늘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걸렸다. 치워야 한다고 되뇌이면서도 선듯 손이 안 간 것은 감당하기 벅차서였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몰입해야 하는데 초당의 마루 공간을 정리하지 않고는 집중이 안 될 듯 했다. 체력은 피로가 안풀리고 바닥 상태였지만 결국 4월 끝 날 시작해 3일까지 나흘 걸려서 엉성한대로 숨통을 트이게 해놨다. 시작이 반 아니던가. 그리고 오늘, 현관 쪽 마루는 제대로 정리가 됐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다. 마루 가장 깊은 곳, 끝쪽으로 최대한 짐들을 모았다. 나름 한다고 노력을 했는데 지난 일주일을 건너뛰고 온 옆지기는 불만족, 다 끝낸 게 아니었는데... 지친 기운이 순식간에 맥 풀리며 허탈해졌었다. 착잡했다. 내가 무얼 한 것인가 싶었다.

 

4, 5월 들어 첫 번째 한국화반 수업을 했다. 4명이 출석, 수업에 열중하다보니 문화원에서 직원이 다녀간 것도 몰랐었다. 세 분은 한국화, 문인화나 서예까지 해온 연륜이 꽤 된다. 스승도 여러 분을 거쳤다. 그럼에도 오로지 체본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을 공통적으로 지녔다. 모방이 아닌 기법을 이해하고 응용해 가며 체본이 아닌 스스로의 느낌을 표현하는 쪽으로 나가야 됨을 역설하는데 힘썼다. 모두 공감은 하는데 과연 고쳐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분은 서양화를 전공했고 한국화는 초보라고 한다. 이분이 규정보다 1시간 일찍 오기에 3시간 수업이다. 물론 내가 허락하고 받아들였다. 수업 자세는 모두 진지하다. 개별 지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늘 되새겨보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 두 시간의 수업으로 초보자들이 아니라지만 과연 어떤 성과를 바랄 것인가. 굳어진 걸 고치기가 새로 배우기보다 더 어려움에랴. 건성 시간 떼우기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늘 그래왔듯 주어진 여건에서 능력껏 최선을 다할 뿐이다.

 

6, 오전 11시 반 경, 정하 선생 부부께서 이웃 송석원으로 꽃구경을 오셨다. 송석 선생이 초청한 것이나 내가 빠질 수는 없다. 가서 기다렸다가 마중을 했다. 나를 보러 오시는 마음도 있으심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붓 잡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지켜보신 분으로는 이제 유일한 분이다. 90을 넘기셨어도 정정하시다. 특히 밝은 기억력엔 탄복할 뿐이다. 계획대로면 성남에서도 지인들이 이날, 날 만나러 오기로 했던 건데 사정이 있어 취소되었다.


꽃구경하시고 막국수로 점심을 같이하며
6월에 있을 매화전 도록에 넣을 글을 부탁드렸다. 정하선생 글은 어쩌다 보니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게 떠올라서다. 민속품을 다룬 저서 강원의 미’ 3집까지 출간하신 필력이다. 당연하다는 듯 허락하셨다. 매화 그림은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못한 상태인데 시간은 쾌속으로 질주하듯 가는 중이다. 40수 모두 분재를 보고 지은 시라서 그렇고 개회시기, 만발한 때의 시는 삼분지 일이고 나머지는 시들고 꽃이 진 모습을 읊었으니 난관이 첩첩이다. 시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나 아예 무시할 수도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