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6월에 들어서서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6-21 11:35:02

 


매화만 가지고 치룰 개인전 날짜를 6월 하순으로 진즉에 잡아놓았고. 마음은 바쁜데 몸의 상태가 따라주질 않았다. 6월이 되자 더욱 초조해지며 압박감이 심해졌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일단 매화의 등걸과 가지를 쳐놓은 숫자는 대략 갖추었는데, 익숙한 홍매가 아닌 백매화를 위주로 작업을 할 것이라 손이 많이 가는 지라 좀체로 더 진전이 안 되는 거였다. 몸의 난조 현상이 작품을 하는데 장애물이 됐다. 5월부터 그런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며 심신이 지쳐가고 점점 더 붓이 안잡혔다. 이런 걸 두고 악순환이라 하겠다. 이러다 덜컥 쓰러질 것 같은 위기감까지 간혹 느끼는 지경이었으니까. 수없이 난관에 처했어도 돌파해냈던 건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밤을 새워도 고작 글씨만 쓰다가 날이 밝았다. 글씨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이렇게 진전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던 경험이다. 포기하느냐 뒤로 미루느냐 결정 내려야 했다. 특히 건강에 유의하라는 주의를 다양한 경로로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도무지 판단을 할수 없었다.

 

 

결국 7, 전시를 후반기로 미뤄야 겠다는 결심을 내렸고 한박사를 불러 알렸다. 남은 시간에 정상적인 심신으로 전력을 다해도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뜬금없이 11월이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 최근에 기록을 보다 알았다며 추월선생의 기일이 11월이란다. 그전에 아는 무속인한테 11월이 6월보다 더 좋다는 말도 들은 게 있기에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풀려나가지 않는 것에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현재 전시실 예약만 취소하면 된다. 예약해 놨던 한박사가 취소하기로 했고 11월의 전시실 상황도 파악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은 먹선으로 꽃잎을 달아 놓은 다섯 점의 매화도에 호분으로 채색을 할 수 있었다. 중압감에서 풀려나니 거짓말처럼 그림이 됐다. 아직 평소 같은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심신이 꽤 편안해졌다.

이제 여유를 가지고 작업을 해나가면 된다. 작품이 안 될수록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가기에 난감함에 시달렸다. 이제 젊지 않다는 체감도 절절하게 했다. 그동안 거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편이어서 특히 그랬다.

 

6월 첫 날은 전국 지방선거 투표일이라 생전 처음해보는 여러 장의 표를 받고 찍어야 했다. 도지사, 교육감, 시장, 도의원, 시의원을 같이 선출하는 선거여서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으니 결과가 어떻든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니 좋았다.


문화원 한국화반 수업일인데 휴강인지 아닌지 헷갈려 화실에 갔는데 김여사가 나왔다
. 그런데 두 분은 연락도 없이 불참, 나중에 들으니 임시공휴일은 수업날이 아니었다. 그래도 김여사는 혼자 수업시간을 초과해 공부를 하고 갔다. 이날 여섯 폭에 먹선으로 꽃잎을 달아놨었다. 백매를 하는 과정이다. 전시회 연기하기까지 채색 작업을 못했었다. 작심하고 밤샘을 해도 그랬다. 작품을 완성해도 추월선생 매화시를 골라 써넣어야 하는 과정이 있고 배경을 우려줘야 하는 작업도 있다. 꽃송이가 생길 때, 반쯤 핀 모양, 만개한 모습, 그리고 시들어 가는 과정과 낙화하는 것들이 시의 내용이라 꽃다는 것도 고려를 해야한다. 이런걸 살피다 보면 진척이 안 되고 밤만 새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까탈스런 작업은 평생처음 체험한다. 하필 매화에서.

 

분재 매화임을 고려하지만 분매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추월 매화시도 참작은 하더라도 매화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언이나 칠언 율시의 제약 속에 시를 짓듯, 그림도 틀 안에서 묘를 살려내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다. 작품을 하다보면 새로운 활로가 열릴 터이다. 발산초려 앞마당에 갑자기 화단이 제법 근사하게 생겼다. 여러 종류의 어리지만 꽃 핀 화초가 심어졌다. 옆지기의 솜씨다. 초려가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외양간을 철거하고 빈 공간이 황량했었다. 옆마당 화단엔 오월에 백모란이 제법 화사하게 꽃피웠고 최근엔 노란 장미도 한 송이 피어있다. 뒷곁은 국화밭이다. 감나무 한 그루도 제법 자라고 고비를 넘겨 건강하다. 매화나무가 고사한 건 아쉽다. 화실도 제라늄 화분 등 꽃들이 곱다. 이런 환경에 만족한다. 초려의 상징같은 대문 옆 제법 큰 오갈피 나무는 송석선생이 봄에 가지치기를 해주셨다. 평소 눈여겨 봐오셨다는 거다.


대문 앞 하수도 옹관 묻는 공사도 얼마 전 지주가 해서 깔끔해졌다
. 환경이 점차 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