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상처도 재산

지소현 승인 2022-07-12 11:44:31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요즘 뜨는 신예 트로트 가수들 중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이들의 스토리가 노래 못지않게 대중을 사로잡는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심이 전달력을 더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 인사들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이 있을수록 그 위치가 더욱 빛이 난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오프라 윈프리의 불행한 성장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미시시피 강 근처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겨우 18세였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시골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넘겨졌다. 6살 때 외할머니 건강이 나빠져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9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에 미혼모가 되었고 곧 아이가 사망하는 슬픔을 겪는다.


상처를 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명문사립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 하지만 유일한 흑인이었던 그녀는 부유하고 안정적인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 심한 열등감에 빠졌다고 했다. 반항아로 변했으며 어머니는 그녀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곳에서도 자살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로 현실을 잊고자 했다. 다행히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격려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전교 회장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각종 말하기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9살이 되던 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자 되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맡은 토크쇼가 미국 전역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무려 20년이 넘도록 말이다. 당연히 부를 거머쥐고 영향력 있는 인사가 되었다. ‘성공 여부는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라는, 그녀만의 인생관 근거한 오프라이즘(Oprahism)이란 신조어가 탄생했다.


장애인인 나는 사춘기 때는 오프라 윈프리 못지않게 열등감과 소외감을 안고 살았다
. 특히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은 학교 가기 싫었다. 교실에 홀로 남아 우르르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묘한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 만성적 소외감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이다. 운동장에서 돌아온, 뒷자리 친구가 책가방에 넣어 둔 지갑이 없어졌다고 법석을 떨었다.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친구 책상 근처에도 가지 않은 나였으나 변명을 해야만 할 것 같아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었다
. 표정 관리를 하면서 잘 찾아보라고 침착하게 말했었다. 그날은 정말이지 지옥이었고 다음날 등교를 했을 때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친구가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지갑이 내 방 책상에 그냥 올려져 있더라고.” 다른 친구들은 코미디 한 장면이 끝났을 때처럼 웃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묶였던 사슬이 풀린 듯 후련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 다만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길흉화복의 근원이 된다.


생각해 보면 친척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이 어디 오프라 윈프리 뿐이겠는가
. 그녀는 모멸감을 이겨내고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그래서 보는 이들에게 위로와 회복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 “인간의 노력과 하늘의 축복이 만나는 지점이 성공이다.”라고. 내 가슴에는 일생 동안 곰삭은 상처가 있다. 이제는 그것이 20만 배의 힘으로 흙을 밀어 올려 싹을 틔우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상처도 나만의 고유한 재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