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시간의 부자들

지소현 승인 2022-08-23 12:06:29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는 금인 시간이 넉넉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는 역발상을 한 적 있다. 100미터 경주하듯 하루를 보낼 때 보다는, 느릿느릿 보낼 때 차오르는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0
여 년 전 재활병원에서 생활할 때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24시간을 쪼개 놓고 그 간격에 맞춰 움직이던 일상, 그것에서 벗어났음이 낯설었다. 꽉 죄는 속옷을 벗었을 때처럼 홀가분하기도 했다.


놀아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 언제든지 고개를 돌리면 수다를 떨 대상이 있다는 것, 문서가 틀리지나 않았나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살펴야 하는 인간관계를 벗어 난 것... 넉넉한 환경이 내 몫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섯 사람이 기거하는 병실의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다. 재활병원의 특성상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소란도 없었다. 마치 몸 불편한 동료들끼리 여행지에서 숙식하는 분위기였다. 일어난 순서대로 씻고 단체로 식사를 하고 회진 온 의사 선생님 만난다. 그리고 정해진 코스대로 운동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없이 자고 또 자는 사람이 있었다
. 그는 건설 현장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여성이었다. 평생을 새벽에 일어났기에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면서 원 없이 잔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뜨개질을 열심히 했다. 덧신도 뜨고 꽃무늬를 놓아 소파 커버도 뜨고...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기에 망정이지 팔을 수술했다면 뜨개질을 했겠어? 다리보다 손이 더 소중한 것 같아긍정적인 웃음을 웃기도 했다. 내 곁에 있던 분은 틈만 나면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고추 모종했나요?” 시골 이웃과 주고받는 말이다. “하이고, 무슨 종자인지 소출이 많이 나야 해”, “ 그 집 고추 모는 해마다 좋더라고그들의 대화는 내가 복도에서 한참 동안 걷기 연습을 하고 들어 왔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한 가지 주제로 30분 이상 말을 이어가는 언변이 놀라웠다. “용건만 간단히그 옛날 공중전화기에 붙어있던 글씨가 생각났다.


창가에 있는 할머니는 영감님과 대학생 손자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 ‘영감이 오늘은 빨리 왔다. 내일도 일찍 와서 휠체어를 밀어주면 좋겠다.’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손자가 오는 날은 혼잣말이 아니라 병실을 모든 사람을 향해 자랑을 했다. 장대 같은 키와 떡 벌어진 어깨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내가 키웠다오. 직장 생활 하는 며느리 때문에 낳자마자 내가 키웠지요손자의 볼과 등판을 쓰다듬으며 애정을 과시했다.


나는 주로 복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 걷기도 하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병원 앞 도로를 끼고 흐르는 소양강이 봄 햇살을 안고 일렁이고 물새 떼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자동차로 오갈 때는 미쳐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넉넉한 시간의 부자들과의 나날들! 풍요한 물질로 비싼 옷을 산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육체를 치장하나 영혼을 덧입히나 마찬가지 아닌가.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영으로 구성된 인간이니 말이다.


여유 속 몸을 담그고 또 다른 것도 얻었다
. 바쁜 일상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한 동생을 저녁마다 볼 수 있었다. 춘천에서 홍천까지, 장거리 출·퇴근하는 고단함 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동생이었다. 그 정성의 값을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자매간의 사랑도 여유로운 시간이 준 선물이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라고 충고한다
. 24시간을 48시간처럼 보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찌 기능적인 성과물만 중요한가. 복잡하게 엉키어 오작동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 아닌가. 최근에는 양질의 쉼이야말로 생산적 에너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던 잘 살아보세시대를 지나,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풍조다.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의 풍요. 이는 진정 또 다른 의미의 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