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촉감과 영감

지소현 승인 2022-09-27 12:31:03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사람의 몸은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상상도 못 한 기능이 가동한다. 예를 들면 양팔을 잃은 사람이 두 다리와 발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보다 남은 기능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증거다.


시각장애인들은 촉감이 발달했다
. 손끝으로 점자를 읽어 낸다. 바늘구멍 같은 문자를 해독하려면 감각이 얼마나 예민해야만 할까.


나는 그들이 천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 늘 사용하는 그릇을 찾고 수건을 찾고, 지폐의 단위도 감각으로 알아챈다. 어느 해이다. 시각장애인들과 동해안으로 캠프를 갔었다. 바다가 넓다는 것,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몰려온다는 것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밤하늘 별이 아름답다고 하니까 감을 잡지 못했다. “별이 어떻게 생겼나요?” 설명할 수가 없어 멈칫했다.


그 아름다운 별을 볼 수 있도록 선생님 눈을 1분만 빌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가슴이 뭉클하면서 괜한 말을 했구나후회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는 그분에게 별을 설명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손으로 더듬게 할 수도 없었고 냄새를 맡아보게 할 수 없었으니까. 아무튼 사람의 몸이 100냥이면 눈이 99냥이란 속담이 생각났다. 99를 상실하고 나머지 1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가.


학창시절에 병으로 눈이 멀었다는 중도 시각장애인이 있다
. 50대 중반에 이른 그분이 말했다. 색깔에 대한 이미지가 서서히 사라지더라고. 다시 말하면 빨간색, 초록색 등등 건강한 눈으로 보았던 색깔들이 점차 새까만 기억 속으로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뇌세포 정보가 퇴화되어 가는 것이리라. 그 대신 촉감으로 물질의 특성과 생김새를 익히며 영감도 발달되어 기억력이 뛰어나다.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성품을 가늠한다. 깍쟁이 같은 사람, 후덕한 사람.


요즘 젊은 부모들은 영
·유아 자녀에게 촉감놀이를 시킨다. 국수, 두부, 미역 등 인체에 해가 없는 식재료를 만지며 놀게 한다. 촉감 놀이는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뛰어난 인지력은 창조적 생각의 바탕이 되며 영감을 키운다고 한다.


영감은 신과 소통하는 종교인에게만 일어나는 신령한 느낌이 아니다
. 촉발 동기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촉감과 영감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고 나서 나름대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본다
. 촉감으로 글 소재를 탐색하면 영감이 불 일 듯이 일지 않을까. 영감을 통해 확장한 나만의 세계가 있다면 얼마나 성공한 문학도이겠는가.

시각장애인들처럼, 보이는 통로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가는 고요 속에서 우주의 소리를 듣는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놓쳐버린 희···락을 모조리 담아내는 능력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