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가을은 깊어가는데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10-05 10:52:40

 


지난 923일이 추분이었다. 며칠 전 부터는 침구 밑에 전기담요를 가동해야 잠자리가 편안하다. 생활은 정중동이다. 모임 참석이며 전시장도 더러 둘러보고 문화원 한국화반의 212학기 첫 수업도 했다.

 


보름간의 방학이 앞서 있었다
. 대부분은 발산초려에서 울 밖도 안나간다. 일기 쓸 것도 많은 편인데 도무지 무감해져서 그냥 흘러보내는 상태다. 중순 경엔 양양 낙산사에 바다를 보기도 할겸 모처럼 다녀왔고, 초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달샘의 환갑을 축하는 저녁 회식 자리도 지인 부부 세 쌍과 분위기 있는 강변의 한식당에서 조촐하게 가지기도 했었다. 분주함은 없으나 꾸준히 다양하게 움직이며 절반은 초당에서 꼼짝않는, []과 정[]의 절묘한 안배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사진가 후배의 귀한 선물도 받았다. 50여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며 가장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게 전각 들이다. 보헌시절엔 가죽공예가가 만들어준 낙관함에 낙관을 보관하며 잘 썼었다. 우안으로 바뀌며 따로 보관하는 무엇이 없는 채 그냥 편의에 따라 써오다가 산천화루로 옮기며 먼저 살던 분들이 버리고 간 높이 70센티, 20센티 크기의 4단 플라스틱 작은 찬장을 낙관보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엊그제 먹감나무로 정성을 다해 짠 목공예품인 전각장을 선물 받았다
. 높이는 플라스틱 장과 같으나 폭은 가로 51센티, 세로 34센티다. 윗쪽으로 9개의 서랍이 달려있다. 아래쪽으로 두 개, 중간 좌우로 작은 서랍 네 개, 중심에 큰 서랍 한 개, 맨 위 쪽은 맨 아래쪽과 같은 크기의 서랍이 두 개로 이뤄진 구성이다. 맨 위는 몸체보다 좀 넓은 판이 있고, 아래쪽 절반은 네 다리로 이뤄진 구조다. 정교하고 앞면 먹감나무의 굵은 추상 무늬가 아름답다. 무슨 복이 겨워 이런 귀한 선물을 받는건지 마냥 감동이다.

 

또 하나 받은 선물은 부귀리 지인이 준 것인데 쇠로 만든 붓걸이이다. 높이 52센티에 큰 붓을 거는 윗쪽엔 8마리의 거북이가 있고 작은 붓을 걸어놓는 하단엔 윗쪽보다 작은 거북이 5마리가 있는 형식이다. 붓걸이 만든 장인은 이제 시력이 나빠져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단다. 50여년 간 붓을 잡아 왔지만 문방구를 제대로 갖추려 하지 않았다. 은사님이 버리고 가신 돌로 만든 붓걸이를 써왔고 평범한 목제 붓걸이와 백자 필통도 있어 붓 관리에 불편한 건 없었다. 사용하는 벼루도 평범하다. 좋은 먹을 쓰는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작품하는 종이 또한 딱히 가리는 편이 아니다. 무엇이든 선호하는 것이 따로 없었다. 쓰다보면 애호하는 붓이 생기지만 처음 선택할 때 까탈스럽지는 않다. 처음으로 훌륭한 전각장과 붓걸이가 생기니 이런걸 갖추는데 너무 무심했다는 자성을 처음으로 해보게 된다.


그럴 여유와 겨를이 없었던 화필생애이기도 했다
. 태어나서 현재까지 각박하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사용하는 지필묵연[紙筆墨硯]엔 무심했어도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한 치열함만은 일관돼 왔다. 긴장을 놓아본 적이 없다. 적당히라는 건 끼어들 수 없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지녀왔다.


타고난 재능을 한번도 자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 그러니 자만은 가질 수 없고 오직 노력으로 부족함을 채웠다. 그렇기에 방심은 있을 수 없었다. 늘 살얼음판 위에 서있는 상태로 조심하며 긴장상태로 살았다.


일복은 타고났는지 할 일은 끊임없이 많았다
. 작품하는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서툴고 게으른 편이다.


그랬음에도 작품조차 늘 노심초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숙달을 추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완숙은 없고 미숙함에 쩔쩔맨다. 평생 수없이 쳐온 매화도 이제야 겨우 눈이 떠지는 중에 있음에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예술계에서 둔재가 무시 당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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