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게발선인장을 기르며

지소현 승인 2022-10-12 11:09:36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나는 게발선인장 꽃을 좋아한다. 볼품없는 작은 잎사귀에 비해 반전의 극치처럼 아름답다. 특히 크리스마스 즈음에 피는 붉은색은 삭막한 겨울을 데우는 불꽃이다.


내가 게발선인장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 5년 전 봄, 평소 거래를 하는 꽃집에 갔을 때다. 주인이 머그컵 크기의 화분에 담긴 게발선인장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화초들을 말려 죽여 온 나로서는 반갑지 않았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받았다.


베란다에 두고 어쩌다 생각날 때만 물을 주었다
. 늦가을 어느 날이다. 뾰족하니 자주색 입술을 내밀고 있는 녀석들을 발견했다. 무관심 속에서 키도 부쩍 자라있었다. 갑자기 대견한 생각이 울컥 솟았다. 얼어 죽을까 봐 거실에 들여놓고 자주 들여보았다. 꽃망울들이 기다랗게 고개를 빼기 시작하더니 12월 초순 드디어 한 송이가 활짝 폈다. 길쭉하니 빨간 꽃잎이 볼수록 매혹적이었고 날개를 펼친 학처럼 고고했다. 꽃송이 중앙에는 부리처럼 앙증맞은 수술이 너무 귀여웠다. 그 어디에 아름다움을 감추어 두었다가 이렇게 뿜어져 나왔을까. 한참을 넋을 놓고 들여다보았다. 며칠 후에는 너도나도 다투어 피어나 작은 화분을 가득 메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녀석들과 눈을 맞추었다
. 외출에서 돌아와도 녀석들부터 살펴보았다. 창밖에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는 붉은 녀석들이 유난히 돋보였다. 하나둘씩 시들어가자 그조차 아까워 조심조심 떼어서 접시 위에 나란히 눕혀 두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발선인장 사랑
! 다음 해 봄, 잘 아는 언니네 집에서 잎꽂이 분을 하나 얻어 왔다. 흰색 꽃이 영락없는 학이어서 탐을 냈더니 준 것이다. 한겨울에 빨간 꽃과 함께 어우러져 거실을 비출 것을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무럭무럭 자라라고 날마다 들여다보고 물을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녀석의 상태는 데리고 올 때 그대로였다
. 한 달쯤 지나서 베란다 청소를 하려고 툭 건드렸더니 풀썩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자세히 보았더니 밑동이 썩어 있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원인을 알아본 결과,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 탈이었다. 속이 짠했다.


어린 시절 지나침 때문에 돌이킬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생명이 생각났다
.


아버지가 이웃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해 오셨다
. 복슬복슬한 털이 귀여운 강아지였다. 오빠와 나는 눈만 뜨면 강아지와 붙어 놀았다.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이다. 우리는 나무상자로 만든 개집에 볏짚을 깔고 헌 옷가지를 넣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사랑방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마침 군불 때던 시간이라 따듯했기 때문이다.잠시 후였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담장 밑에서 하던 구슬치기를 멈추고 마당을 바라보았을 때다. 사랑방 부뚜막 위에 벌겋게 넘실대는 불길이 보였다.


아차
! 강아지 집이 타고 있는 것 아닌가. 정신없이 달려가 물을 퍼부어 불을 껐다. 그리고 재빨리 강아지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 귀여운 강아지는 검게 그을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빠와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흔들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과도한 사랑 때문에 허망하게 보낸 생명체였다. 그 강아지 비명이 평생토록 귓전에 남았거늘, 게발선인장에게 물을 퍼부어 주다니. 비명 지르기도 불가능한 아이가 썩어가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좋아하는 것일수록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남아있는 게발선인장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겨울마다 매혹적인 자태의 꽃을 피운다. 꽃을 바라보면서 가끔 아들들에 대한 사랑의 질량도 측정해 본다. 혹시 나도 모르게 과도한 애정을 쏟아서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게발선인장을 기르기는 나에게 건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 지침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