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한글, 한국어의 세계화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10-18 11:52:59


 

109일은 한글 창제 573주년인 날, 세종대왕의 위업은 세월이 갈수록 빛난다. 현대 인터넷 시대에서 한글의 기능은 그 우수함이 탁월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떤 글자도 능가하지 못한다. 컴퓨터 자판을 칠 때마다 편리함을 체감하며 감사하게 된다. 창안해낸 이들과 취지가 분명한 유일한 글자이기도 하다.

 


세계의 어떤 글자도 만든 사람이 밝혀진 바 없다
. 덕분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글자가 단순하고 배우기 쉬워 조선시대 내내 양반 등 지배세력의 천대를 받으며 멈춰있었고 폄훼당했으며 그럼에도 춘향가 등이 나오고, 시조며 가사문학이 명맥을 이어왔었다. 한글의 교육 기능은 사회든 국가든 조선시대 내내 전혀 없었다. 한글학자가 나온 것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이후부터다. 애국과 독립운동이 결합되며 한글은 체계를 잡아가고 보급되며 국어로서 대접받는다. 초기는 국한문 혼용이어서 주인공은 한문이고 한글은 보조격 역할이었다.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된 후에도 그런 모습이 지배했다.

 

나라의 상류층과 지배층들이 한문을 숭상하고 애용했기 때문이다. ,,, 교육에서 한문이 사라진 건 군사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이후부터다. 한문은 천 몇 백자만 기본으로 익히게 했다. 문학이 한글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뛰어난 현대문학들이 증명한다. 각 신문사에서 공모한 신춘문예가 문학인들을 자극하는 큰 역할을 해줬다고 여긴다. 해방된 이후는 더 그랬다. 야망을 가진 문학인들은 열병을 앓았으니까. 혁명세력이 아니고는 국한문 혼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라 보기에 혁명의 공과를 다 떠나서, 한글전용으로 방향을 잡은 건 가장 큰 공적이라 여긴다. 기득권층의 저항이 원체 컸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관청의 모든 공문서를 한글만 사용토록하며 틀을 잡아갔다. 615.16혁명을 하고, 한글전용시행은 197011일부터 였으니 밑바닥의 저항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박통이 스스로 탑골공원의 정문을 삼일문이라 직접 휘호하고 더 나아가 광화문현판까지 한글로 썼다. 대단한 파격이자 실천이다.

 

세계엔 6천여 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문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현재 세계에서 소통되는 언어는 영어가 대세이다. 서로 국적이 다르면 영어를 사용해 대화 하는 걸 유튜브를 통해 많이 본다. 국제공용어 역할을 영어가 자연스럽게 해내는 중이다. 미국의 막강한 국력이 끼치는 영향력이겠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영국이 먼저 기반을 깔아놨을 터이다. 유튜브엔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유명한 곳만 소개하던 예전과는 달리 알려지지 않은 낮선 도시며 시골마을이 더 많이 등장한다. 그곳의 주민들 대다수가 한국어 한두마디는 최소한으로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드라마와 방탄소년단 등 케이팝의 선호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한류라 하겠다. 절로 뿌듯해지고 국뽕이 차오르게 된다. 놀라울 정도로 파급력이 넓고도 크다. 말하기보다 듣는 수준은 더 대단한 편이다.

 

언어와 더불어 한식도 전 세계인이 좋아함을 보게 된다. 김치를 좋아하고 종류를 가리지 않으며 빠져든다.


한식당 또한 광범위하게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 한국의 국력이 눈부시게 커지며 생겨나는 현상이다. 정작 내 나라의 수구라 불리는 쪽만 실감을 못하는 듯 싶다.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모든 일엔 균형추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몽땅 쏠린다면 그것도 위험하다. 오천만 인구가 생각이 똑같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작은 나라가 그나마 반쪽으로 이뤄가는 성과이니 통일이 된다면 어떨 것이냐. 너무 빠르다 싶을 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가는 중이다.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선생의 말씀이다. 그 문화의 힘이 커졌고 우리 문화가 여러 경로를 통해 만방에 퍼져가고 있음이다. 지구촌 인터넷의 발달이 한문화를 파급시키는 촉매재가 된다. 무엇보다 한국드라마와 음악이 일등공신이다. 백범이 희구하던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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