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깊어가는 가을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10-25 13:22:41


 

요즘 며칠 째 일어나면 앞마당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 따듯한 햇볕을 쬐는 걸 즐기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날씨와 기온에 달렸다. 아직은 화단에 날아오는 나비와 벌들을 본다. 보게 되면 반갑다.


내린 서리에 타격을 받고 있지만 꽃들의 존재감이 이젠 귀한 몸인 벌과 나비를 불러들일 정도는 된다
.


한동안 낮에도 한기가 있어 움츠러든 날들이 있었다
. 따듯한 기온의 낮일 때도 밤에는 한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겨울옷을 입기엔 이른 듯 하고 그래도 옷을 조금 더 입으며 버티는 중이다. 논밭도 수확의 흔적들로 텅비어간다. 아직 거둬들이지 않은 것도 있다. 산들도 단풍이 점령군처럼 면적을 넓혀가며 녹색은 나날이 줄어드는 중이다. 밤엔 선풍기 모양의 열풍기를 가동한다. 계절 덕분에 감이며 고구마, 왕밤까지 맛보며 지낸다. 달샘이 선물로 받은 영종도 밤에 이천 고구마, 이웃서 준 대봉감까지 가을의 풍미를 모처럼 아낌없이 즐긴다. 몇년 째 계속되는 하루의 첫 일과로 사과를 먹는 건 무엇보다 즐겁다.

 

해야 할 작업들은 늘 밀려있는 편이다. 이것도 복이라고 여긴다. 남옥선생의 매화시를 바탕으로 매화전을 준비하다가 일단 멈춘 상태로 있다. 내년 매화꽃 필 무렵을 전후해 가질 생각이다. 오는 겨울에 깊이 파고들어 볼 생각이다. 이것 말고도 소품 매화도를 19점 의뢰받은 게 있어 붓을 잡아야 한다. 예우회전부터 도미협전, 뿌리전, 일본 방부시 교류전까지 모두 매화 작품을 냈다. 남옥 매화시를 화제로 넣어서다. ‘전통의 재해석이란 주제로 1026~112일까지 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질 춘천 미협전엔 개작한 율곡매를 출품한다. 기존 작품에 긴 가지 하나를 더해 허한 공간을 갈라서 짜임새를 더했다. 문인화의 전통을 지키면서 사생을 바탕으로 관념성을 탈피한 매화도라 재해석에 잘 맞는 작품으로 판단했다. 화제는 율곡선생의 유일한 매화시를 곁들인 것이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몇 년 사이에 율곡매가 90% 고사한 걸 달샘한테 그제 들었다. 전문가들은 수명이 다해가는 걸로 진단하고 있었다.

 

율곡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백여 년의 수명을 가진 고매[古梅]이다. 사임당의 부친인가 조부가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인터넷을 검색해 현재의 모습을 보니 건강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노목[老木] 등걸에 가지 몇 개만 남아있어 충격적이다. 그러나 아직 고사한 건 아니다. 현재의 모습이 간결해져 작품으로는 새로운 맛이 날거란 기대를 가지고 꽃필 때를 기다릴 셈이다. 춘천미협전 말고도 한두 개 더 전시가 있을 거다. 올 하반기 전시는 오로지 매화 작품으로 점철하게 된다. 문제는 내 특유의 개성이 서린 매화를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고민이 크다. 방향이 잡혀가기는 한데 뭔가 노숙함 보다는 젊은 기운이 팽팽한 매화로 나온다는 것이다. 사생을 바탕으로 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리라.


매화만이 아니라 산수를 비롯해 모든 소재를 다루며 내 개성을 뚜렷하게 이루지 못한 건 큰 아쉬움이다
.


그려가다 보면 내 개성이 절로 드러나기를 바랬었다
. 치열하게 추구하지는 않았다. 아직 늦은 건 아니다.

 


전시회를 보러 시내를 두 차례 나갔다 왔고
, 초교의 개교 백주년 기념 큰 비석 글씨도 써달라는 의뢰를 받은 상태다. 중순엔 현곡, 석주시인과 최이사가 찾아와 모처럼 점심을 같이하며 반가운 만남도 있었다.

문화원 한국화반은 첫째, 둘째 주엔 두명 씩 출석해 수업을 했고 셋째 주엔 모두 결석해 처음으로 결강이 됐다. 넷플릭스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이틀에 걸려 시청하며 푹 빠지기도 했다. 지난 여름에는 오징어게임전편을 시청했었다. 전 세계가 열광한 드라마다. 청각장애자용 자막이 나와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경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무엇보다 뿌듯한 건 우리 문화의 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더욱 커지고 넓혀지며 깊이 파고들 터이다. 다시 촛불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다 모든 영역에서 망가지는 모습에 국민들이 참다가 촛불을 다시 들었다.


평화의 힘을 이미 터득한 국민들이다
. 22일 오후에 광화문일대에 수십만 명이 운집해 촛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