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인생사와 손(hands)

지소현 승인 2022-11-01 13:44:52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천하가 이 손안에 있소이다오래전 어느 사극에서 한명회라는 인물이 하던 말이다.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그가 돌풍을 일으키는 장면들보다 더 강력하게 각인되기도 했다. 불교에는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절대 권력을 의미하며 손금 보듯 훤히 안다라는 우리 속담과도 상통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영향력을 표현한 손도 있다
. “누구를 쥐락펴락한다, 누구에게 잡혀 산다는 말이다. 이처럼 지배의 의미, 틈새의 기능, 인간관계 설정까지 그려내는 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신체 부위다.


손은 생업의 최일선을 담당한다
. 그래서 생김새를 통해 직업을 엿볼 수도 있고, 손바닥 금으로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어둡던 시절에는 손금에 관한 미신이 종교처럼 널리 퍼지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 한 점쟁이가 있었다. 그가 누군가의 손끝을 거만하게 잡고 손바닥을 읽던 모습이 기억난다. 명이 길 것이다, 공부를 잘할 것이다, 숨은 속을 끓이며 살 것이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던 산골 사람들.


그런데 한 아이에게
너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 다 탕진하고 바랑을 메고 조선팔도를 유랑할 것이다라고 했었다. 그 아이 어머니가 길길이 뛰며 대판 싸움을 벌여서 이슈 거리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보니 어머니의 분노가 옳았다. 유산을 탕진하기는커녕 대기업 중견 간부가 되어 가세가 더욱 창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손바닥 금이 사람들을 홀리는 것 같다
. 부자 운명이라면서 삼지창이니 엠자니 일자니 하는 모형이 인터넷에 떠돈다. 여기서 내가 느낀 아이러니가 있다. 갑부가 된다는 일자 손금이다. 원숭이들 손에만 있거나 다운증후군, 선천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대한 부자 운명을 쥐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긴가민가하다. 해부학적으로 손금은 손바닥 피부가 근막에 단단히 붙어있으며, 접고, 펴고, 쥐는 운동을 자유롭게 조절한다고 한다.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증거다. 부자의 기본인 부지런한 손놀림, 그래서 부자 손금도 탄생되지 않았을까.


손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보다 귀함과 추함
, 두 가지 부류다. 사랑을 나누는 손, 맞잡은 손, 생명을 살리는 손, 효도하는 손, 손뼉 치는 손, 짐을 들어 주는 손...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
. 부지런한 농부의 손이기 때문이다. 옹이처럼 굵은 마디, 설거지용 수세미처럼 거친 손바닥, 닳고 또 닳아서 깎을 필요가 없었던 손톱. 그 손 덕분에 보릿고개 시절 우리 5남매가 배곯지 않았으며 저학력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다. 아울러 내 부모님의 손이야말로 세상을 쥐고 있던 손이었다.


반대로 추한 손들은 어떠한가
. 도둑질 손, 속이는 손, 구타하는 손, 생명을 빼앗는 손, 잘못만 지적하는 손, 손가락질하는 손, 삿대질하는 손... 어둠을 몰고 오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들이다. 어린 시절 산골 놀음 꾼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것을 보기도 했었다. 이웃집 머슴을 사는 자기 아들의 새경까지 가로채 탕진한 손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손안에 있소이다는 권력자나 절대자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손으로 시작해서 손으로 살다가 손으로 끝이 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손 들었던 것들을 돌아본다. 절망과 좌절의 흔적도 있고 그 골짜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한 상흔도 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삶의 징표가 아닌가
. 그래서 양손 맞대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