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숨쉬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지소현 승인 2022-11-08 16:50:43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란 햇병아리다. 유년의 추억 때문이다. 뒤란으로, 꽃밭으로, 대추나무 아래로,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는 어미 닭을 쫓아 종종거리는 노란 병아리 떼. 가끔은 혼자 떨어져 졸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안타까워서 어미 닭 몰래 들고 와 방안에 둔 적도 있었다. 물을 주고 좁쌀을 주고 정성을 다하지만 자고 일어나 보면 축 늘어져 있기가 일쑤였다. 심장이 정지해버린, 싸늘한 감각이 얼마나 섬찟한 슬픔을 몰고 왔던가. 더 이상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았다.


문득 숨 쉬는 것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통해 듣던 태아의 심장 박동이 얼마나 거룩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만큼 잔인한 동물도 없다. 타인의 심장을 내 마음대로 멈추게 한 역사가 어디 한둘인가.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 차별...


사이버에서 노예무역선 사진을 본 적이 있다
. 철장 틀 밖으로 수많은 발바닥만 나란히 보이는 사진이었다. 꼼짝 못 하고 누워 갇힌 흑인들의 것이었다. 유럽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만들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던 시절, 백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거래했다. 특수 제작한 배에 수천 명씩 싣고 망망대해를 오고 갔었다고 한다. 그 순간에도 그들의 심장만은 뛰고 있었겠지. 아무런 가책도 없이 타인의 생사를 쥐고 흔들었던 비인간적인 역사다.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내 눈으로 보기도 했다. 6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는 딸들은 공부를 시키지 않는 가정이 많았었다. 상급학교에 진학한 남자 형제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일찌감치 도회지 공장으로, 식모살이로 보내지기도 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시어머니에게 쫓겨나는 아낙네도 보았고 작은 마누라를 당당히 들이는 남정네도 보았다. 얼마나 지독한 차별이고 만행인가. 이 같은 사고방식은 80년대까지 더러 이어졌다. 태아 감별을 해 딸이면 공공연하게 낙태를 해도 비난을 받지 않았다. 딸도 동등한 자식이라고 인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딸이 더 좋다고들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아직도 소중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그들은 인류의 마지막 차별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쓸모없는 인간, 천한 인간, 버릴 인간으로 낙인찍는다. 나 자신도 경험했으며 수없이 목격하기도 했다.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 효능 여부, 미적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장애아를 버리기도 했고 활쏘기훈련 때 과녁으로 세우기도 했었다
. 우리가 잘 아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이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고 선두주자로 나섰다는 기록도 있다. 대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그러했을 정도니 학대의 강도가 오죽했겠는가.


현대는 장애인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난무한다
. 상술에 이용하는 장사치, 외로움을 약점 삼아 친하게 된 후 금전적 착취를 하는 양아치, 꼬드겨서 성욕을 해소하는 파렴치, 장애인단체를 자신의 명분 세우기에 이용하는 역겨운 정치꾼...

 

따듯한 세상을 꿈꾸는 21세기다. 봄이 오면 암탉이 본능적으로 알을 품듯 누구나 생명을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쯤 숨 쉬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까. 어미 닭을 쫓는 햇병아리 떼 속에서 졸던 한 마리, 그 주검의 차갑고 섬찟한 슬픔이 사라질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 세상이 온통 봄날처럼 따듯해지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