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빛 가운데는 상대가 보이고 어둠 속 창문으로는 내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이는 상대는 여러 측면에서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사랑을 안고 정면에 나설 수 있으며, 등 뒤에서 의지처가 될 수도 있고,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지 않고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시야 확보다. 그 공간은 넉넉한 심성에서 발현되는 빛이 있다. 오랫동안 장애인복지 현장에 근무했던 실제로 등대 같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었다.
20여 년 전, “여성장애인 임신육아지원사업”을 담당할 때 만난 두 분의 목회자 사모는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우선 농촌지역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 이야기다. 어느 늦은 봄날 아침,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모 지역 기업체에서 장애인 부부 자녀에게 우유를 후원한 미담이었다. 마침 여성장애인의 다중적 고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사업의 담당자였던 나는 기사 속 장애 여성 상황이 궁금했다. 엄마로서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자동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해당 읍사무소 복지담당자를 찾아갔다. 마침 그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었기에 기꺼이 가정을 안내했다. 집안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가난한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지역 주민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집 안에는 3대가 살고 있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 지체장애인인 아버지와 지적장애인의 어머니, 그리고 5살과 6개월 된 사내아이들이 있었다.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상태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특히 6개월 된 아이는 앙상한 팔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린 체 고개도 못 가누었다. 기업체가 우유를 후원한 이유를 알았다. 동행한 복지 공무원의 추천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위기 상황을 돕는 데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적장애인 엄마는 우유의 농도도 맞추지 못했으며, 분별력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도 거동이 불편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육아 도우미를 물색했다. 한창 바쁜 농촌 지역인지라 인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마을 입구 조그마한 교회 목회자 사모가 자청하고 나섰다. 곧바로 두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안고 어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아이들은 점차 정상적인 발육상태로 진입해 갔다.
나는 상급기관에 도우미 활동비 명목으로 긴급지원 예산을 요청했다. 사모의 노고를 합법적으로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그 돈마저도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옷을 사 입히고 육아용품을 사고, 장난감을 샀다. 그 사랑 덕분에 아이들은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성장했음을 물론이다.
그리고 가슴에 남은 또 한 분은 도시지역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였다. 스스로 신변처리만 겨우 가능했던 30대 두 자매가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사모는 매주 1회 이상 그들을 방문해 반찬, 세탁, 청소, 공과금 납부, 장기 복용 약 구입 등등 10여 년 간 수족이 되어 주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인지라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한 시간 이상씩 걸어 다니면서 말이다. ‘중증 장애여성 가사 지원제도’가 탄생되기 전이라서 순전히 무보수 봉사였다.
과거 이처럼 스스로 타올라 빛이 되었던 분들! 그분들이 지금의 촘촘한 장애인복지 제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추운 겨울날,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는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곳곳에서 빛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빛이야말로 담장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축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