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담장을 넘어가는 축복

지소현 승인 2022-12-20 11:54:33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빛 가운데는 상대가 보이고 어둠 속 창문으로는 내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이는 상대는 여러 측면에서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사랑을 안고 정면에 나설 수 있으며, 등 뒤에서 의지처가 될 수도 있고,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지 않고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시야 확보다. 그 공간은 넉넉한 심성에서 발현되는 빛이 있다. 오랫동안 장애인복지 현장에 근무했던 실제로 등대 같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었다.

 

20여 년 전, “여성장애인 임신육아지원사업을 담당할 때 만난 두 분의 목회자 사모는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우선 농촌지역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 이야기다. 어느 늦은 봄날 아침,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모 지역 기업체에서 장애인 부부 자녀에게 우유를 후원한 미담이었다. 마침 여성장애인의 다중적 고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사업의 담당자였던 나는 기사 속 장애 여성 상황이 궁금했다. 엄마로서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자동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해당 읍사무소 복지담당자를 찾아갔다. 마침 그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었기에 기꺼이 가정을 안내했다. 집안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가난한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지역 주민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집 안에는 3대가 살고 있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
, 지체장애인인 아버지와 지적장애인의 어머니, 그리고 5살과 6개월 된 사내아이들이 있었다.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상태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특히 6개월 된 아이는 앙상한 팔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린 체 고개도 못 가누었다. 기업체가 우유를 후원한 이유를 알았다. 동행한 복지 공무원의 추천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위기 상황을 돕는 데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적장애인 엄마는 우유의 농도도 맞추지 못했으며, 분별력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도 거동이 불편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육아 도우미를 물색했다
. 한창 바쁜 농촌 지역인지라 인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마을 입구 조그마한 교회 목회자 사모가 자청하고 나섰다. 곧바로 두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안고 어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아이들은 점차 정상적인 발육상태로 진입해 갔다.


나는 상급기관에 도우미 활동비 명목으로 긴급지원 예산을 요청했다
. 사모의 노고를 합법적으로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그 돈마저도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옷을 사 입히고 육아용품을 사고, 장난감을 샀다. 그 사랑 덕분에 아이들은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성장했음을 물론이다.

 

그리고 가슴에 남은 또 한 분은 도시지역 작은 교회 목회자 사모였다. 스스로 신변처리만 겨우 가능했던 30대 두 자매가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사모는 매주 1회 이상 그들을 방문해 반찬, 세탁, 청소, 공과금 납부, 장기 복용 약 구입 등등 10여 년 간 수족이 되어 주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인지라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한 시간 이상씩 걸어 다니면서 말이다. ‘중증 장애여성 가사 지원제도가 탄생되기 전이라서 순전히 무보수 봉사였다.


과거 이처럼 스스로 타올라 빛이 되었던 분들
! 그분들이 지금의 촘촘한 장애인복지 제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추운 겨울날,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는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곳곳에서 빛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빛이야말로 담장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축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