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냉이 즐기기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3-05-03 11:55:15


황장진 작가

문단데뷔 : 1991. 문학세계수필 신인상

강원수필문학회·청계문학회 고문

수필집 : 가나다 타파하,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참 바보

전자 시집 : 항상 장대하라, 항상 빼어나라, 한우리 연구

 

3화 냉이 즐기기

 

경칩을 지나니 하늘 색깔은 조각구름 한 점 없는 쪽빛이다. 바람도 어디 숨었는지 기척이 없다. 화천군 간동면 가래울의 병풍산 중턱엔 하얗거나 새까만 개들과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봄볕을 쬐면서 팔자가 늘어져 있다. 참새들은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요 나무 조 나무 옮겨 다니며 조잘거리며 나그네를 맞는다.


새까만 까마귀 녀석은 높다란 참나무 위에 올라 앉아서 계곡의 늦잠을 깨운다
.


깍깍.”


무로의 댁 들머리와 잔디 마당에는 파란 새싹들이 파릇파릇 새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 앞쪽은 올망졸망 오봉산과 삼각 고깔이 이어진 용화산 줄기가 물결치며 내달리고 있다. 호미와 비닐 주머니를 챙겨 들고 또박또박 봄볕 노니는 밭으로 내려간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기하고 있다. 꼬리 살래살래 가까이하는 걸 보니 나들이가 즐거운 모양. 알려준 밭에 들어선다.


도라지를 키웠던 밭 두툼한 망의 흔적이 아직도 배를 내밀고 있다
. 셋이 한 망씩 차지해서 눈에 불을 켠다. 냉이 가족이 여기저기서 떼 판을 이루어 반긴다. 호미로 썩썩 긁어서 한 녀석 한 녀석 뽑는다. 쑥쑥 잘도 뽑혀 올라온다. 녀석들은 뿌리 힘이 좋아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긴 몸체가 몽땅 나타난다.


뿌리 길이가 손 매듭 하나에서부터 반 뼘이나 한 뼘이 되고 망이 두툼한 곳에선 심지어 두 뼘짜리도 으스댄다
횡재하는 기분. 엔도르핀이 쑥쑥 솟아난다. 냉이가 차지한 보금자리엔 다른 풀이 뵈지 않는다. 몽땅 냉이 천국!


아직도 푸른 기가 왕성하지 않아 어떤 데는 불그스름하거나 까무잡잡해서 냉이가 아닌 줄로 알고 지나칠 뻔
. 죄다 흙을 다부지게 품어 한 포기 한 포기 캘 때마다 호미에다 여러 번 툭툭 털어야만 말쑥해진다. 어제 캐 간 분들은 몇 바구니 그득했겠다. 망의 윗부분에만 호미 흔적이 있는 걸 보니 꽤 실한 것들을 캤을 듯. 그것도 여러 망을 뒤졌으니


냉이는 부르는 이름이 지방에 따라 다르다
.


나생이
, 나상구, 나중개, 나시, 나잉개, 애이, 등 여러 가지다. 냉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들과 밭 길가에서 잘 자란다. 잎 꽃줄기가 모두 작은 것이 가장 맛이 좋다. 줄기가 단단하고 털이 있는 것은 맛이 없다. 냉이꽃을 그늘에 말려 가루를 내어 대추 탕을 만들어 먹으면 오래된 이질을 다스릴 수 있다. 냉이 뿌리와 잎을 태워 재를 만들어서 먹기도.


냉이는 성이 따뜻하여 오장에 이롭고 눈을 밝게 하며 배고플 때 먹으면 좋다
. 농가에서는 봄철만 되면 어린 냉이를 뜯어 데쳐서 나물로 하거나 찌개나 밥에 섞어 먹기도.


냉이 꼬투리를 잘 말려서 손으로 비벼 물에 넣고 휘저어 두면 그릇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 이것을 죽이나 단자에 섞어 만든다. 봄철에 가장 많이 먹는 국 가운데 하나가 냉잇국이다.


국을 끓일 때 하얀 쌀뜨물을 받아서 모시조개를 조금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이면 쌉쌀한 맛이 향긋한 내음과 더불어 구수한 맛을 북돋운다
. 토장에다 고추장을 조금 넣은 다음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냉잇국은 땅이 녹아 풀리는 냄새가 나서 봄철 입맛을 한껏 돋운다. 겨울철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해 원기를 돋우고 몸속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어 피로 풀기와 춘곤증에도 좋다.


냉이의 뿌리와 줄기를 달여 차로 꾸준히 마시면 눈이 맑아지고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 부지런한 농가에서는 겨울철에 냉이를 캐서 움에 갈무리해 두었다가 국을 끓이거나 말려두기도. 냉이는 봄보다 겨울 것이 더 달고 맛이 있다.


냉이는 핏속의 노폐물을 없애주고 독소 배출을 도와 피돌기를 잘되게 하여 혈관을 튼튼하게 한다
.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어 동맥경화나 고혈압과 같은 혈관 건강을 돕는다. 코피와 자궁출혈 폐출혈 각혈이나 치질 등의 지혈제로도 쓰인다. 냉이를 제철에 꾸준히 먹으면 항암치료는 물론 암 예방 효과까지 볼 수 있다. 간을 해독시켜 머리가 띵한 숙취 해소에도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위를 튼튼하게 해주고 소화액을 분비시켜 소화를 빠르게 한다.


늙은이들의 골밀도를 높여주고 골다공증에도 좋다고
.


이렇게 좋은 먹거리를 두 봉지나 거두어 왔으니 가족들과 신나게 즐겨야지
. 내일부턴 그 미가 솜씨를 벌리는 냉이 양파 다시마 고추 멸치 표고버섯 된장을 넣은 냉이 바글바글 장으로 밥 한 그릇 후딱 게 눈 감추듯 해야지. 봄이여, 땅이여, 벗이여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