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장애예술인인터뷰, '2023이원형어워드 수상자' 화가 백지은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3-11-14 11:19:13


백지은 화가 작업 모습. 백지은

 

잘 놀고 멋내기 좋아하는 소녀

 

철없던 시절 백지은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즐거웠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도 재미있고, 언니 같은 엄마와 아웅다웅하며 사는 것도 행복했다. 더욱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구두와 주얼리 등으로 멋내기를 좋아해 한껏 멋을 내고 나가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예쁘다는 칭찬을 받을 때 자존감이 뿜뿜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재수를 하며 인생의 쓴맛을 느꼈지만 합격하면 되니까 재수의 고통도 곧 쫓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은아 바다 보고 싶지 않니?’ 라는 친구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바다를 보고 오면 공부에 더 집중이 잘 될 것 같아 따라나섰다.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때가 1998년이었다.

 

지은은 뒷좌석에 타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사고 당시의 상황을 모른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경추 7번을 다쳐 손까지 사용하기 힘든 중증장애가 생겼다.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멀쩡하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그 당시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여유를 부렸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애가 현실로 느껴진 것은 8개월 만에 퇴원을 해서 집에 온 후였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들이 너무나 하기 힘든 일이 되었고, 특히 화장실 문제로 생기는 돌발상황이 지은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멋스럽게 살고 싶다

 

장애 극복이니 재활이니 하는 단어 대신 지은은 멋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다치기 전에는 패션학과를 지망했었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며 패션은 접었다. 패션을 하려면 디자이너 자신이 패셔너블해야 하는데 그것은 왠지 휠체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술로 전공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대학이 어디에 있든 상관이 없었지만 다친 후는 집에서 가까운 것이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래서 백석대학교로 정했는데 그곳에는 미술대학이 없었다. 2005년 디자인영상학부가 신설되어 바로 입학하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집 앞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화실도 다니며 이미 많은 작품을 하고 있었기에 대학은 멋스럽게 살고 싶어서 택했는지도 모른다.

 

화실 선생님이 전시를 많이 하는 분이어서 그동안 전시회 구경을 많이 했고, 그림을 꾸준히 하면서 그림 그리는 분들을 알게 되었는데 지은의 그림을 보더니 전시회를 한번 하면 어떻겠냐고 하여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첫 개인전은 2005년에 개최했는데 많은 지인들이 와서 격려해 주었다. 작품이 독특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에 힘이 쥐어지지 않아 붓 대신에 나이프로 채색을 하다 보니 선이 굵고 물감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지은만의 독특한 화풍이 생겼다.

 

레슨을 하다

 

엄마는 그녀의 작품 활동을 위해 화실을 마련해 주었다. 휠체어 동선을 위해 좀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딸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엄마도 할 일이 필요했기에 화실 한쪽을 막아 엔틱 찻잔 카페를 냈다. 자기 공간이 생기자 지은은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엄마 카페에 왔다가 벽에 걸린 지은 작품을 보고 관심을 보이면 화실로 와서 그림을 보여 주었는데 그러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성인 레슨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이들 레슨도 하게 되었는데 꾸준히 오랫동안 배우는 사람이 많아서 지은은 레슨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2014년에 중앙대학교에서 1년 과정으로 문화예술교육사 과정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획득했다. 천안에서 서울까지 가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도 지은도 파김치가 되지만 국가자격증을 받고 뿌듯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에 갔을 거라고 엄마와 딸은 농담을 한다. 그 덕에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시골 다리에 그림을 그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실시하였고, 천안·아산교육청에서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아 학교마다 찾아다니며 강의를 했다.

 

프랑스 파리에 가다

 

파리에서 유학하는 성악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한국에 잠시 왔다가 집에 놀러 왔다.

 

, 그래도 화가라면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한번 해야 되지 않겠니?”

 

친구의 말에 지은은 프랑스 파리에 필이 꽂혀 앞뒤 안 보고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친구가 전시회 장소 등 전시회에 필요한 준비를 해 주기로 하였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에 응모했는데 선정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하기에는 택도 없이 부족했지만 언제나처럼 엄마가 보태주었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숙박비 인데 가격이 싸면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해서 고생을 했다.

 

이렇게 어렵게 첫 번째 해외 전시회인 Guilmong(LE CONNETABLE, 프랑스 파리)2017년 개최하였다. 그리고 2018Sonated' insomnie(Studio.iam_ist, 프랑스 파리), 2019Temperature(L' IME ART, 프랑스 파리) 연이어 프랑스에서 개인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첫 전시회에 갤러리 관계자들이 와서 보고 초대를 해 주어서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과 미국 뉴욕에서도 기획전 초대를 받아 국내 전시회와 함께 해외 전시회 기회까지 생겨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201810회 개인전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했을 때 가슴이 벅찼다. 지방에 거주하면 서울의 벽이 높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안 되더라도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 전시회 신청을 했는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이 된 것이 너무 기뻤다.

 

변화를 위한 도전

 

백지은 작가는 엔틱 찻잔 수집이 취미였다. SNS를 통해 누가 엔틱을 내놓으면 바로 구입하여 사 모았다. 일산에 계신 분과 거래를 오래했는데 그 물건은 깨지기 쉬워 택배로 받지 않고 직접 가서 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드라이브 삼아 일산까지 가서 그분을 6년 만에 처음 만났다. 방송사 미술팀 간부로 근무하며 해외 출장이 많아서 엔틱을 사왔는데 너무 많아서 조금씩 내놓고 있다고 하셨다.

 

그분도 그때 처음 백 작가를 만나 화가라는 것을 알았고, 장애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2021년도 겨울에 연락을 주셨다. 작품을 봤는데 괜찮다 싶어서 TV드라마 소품으로 넣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22MBN드라마 <스폰서>, 2023MBC드라마 <넘버스>에 백지은 작가 작품이 협찬으로 들어갔다.

 

사실 3년 동안 코로나19로 엄마 카페와 화실을 접었다. 사람이 없는데 월세만 계속 나가는 상황을 버티기 힘들어 작년에 포기를 했다. 역시 코로나로 전시회도 열지 못했기에 올 10월에 개인전을 하기 위해 60평 규모의 큰 갤러리를 예약했다. 그동안 그린 작품을 모두 전시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해외 전시회도 열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비영리단체인 웜스프링문화예술연구소에서 굿즈도 제작하여 판매할 생각이다. 조카가 프랑스에서 패션 관련 공부를 하고 조향사로 일하고 있는데 조카가 향을 만들어 주면 백 작가가그 향을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향초나 방향제를 만들 생각이다. 작품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소품으로 구입해서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굿즈를 판매하기 위한 홈페이지도 예쁘게 만들겠지만 전시회도 그렇듯이 홍보와 모객이 가장 힘들다.

 

아빠는 안 계시고, 남동생은 결혼해서 살기 때문에 모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언제까지 엄마한테만 의지할 수 없어서 백지은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이원형어워드 수상자

 

장애미술인 취업에 참여해 보겠느냐는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백지은은 그런 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협회인지 궁금하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23년 영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라는 카피로 구상솟대문학상과 이원형어워드 공모 소식 팝업창이 떠 있었다. 1명을 선정하는 것에서 상의 가치가 느껴졌다.

 

접수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응모 서류를 작성하여 보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위로했다.

 

한 명인데 안 될 거야,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지.’ 라고 애써 희망과 기대를 줄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명의 주인공이 자신으로 결정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2023년 이원형어워드 수상자 백지은 화가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모든 활동이 중단되자 화가라는 정체성이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었어요. 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뒤돌아보면서 작품의 새로운 방향을 연구 중이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원형어워드 수상이 내 자신에게 믿음을 주었어요. 이제 내가 나를 믿고 작업을 할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흔들림 없이 그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원형어워드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화가가 되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