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복 수필집, 아름다운 반칙] 삶의 난간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4-04-15 14:11:24


김종복 수필가

부산 출생

전 강원 중·고등학교 영어교사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

2013월간 수필문학’ <도보여행><고양이 일기>로 등단

전 춘천수필문학회 회장,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강원수필문학회,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에서 동인활동

 

 

삶의 난간

 

일요일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같은 직장에서 30여 년 함께 근무하고 같은 해에 명예퇴직한 친구 같은 동료의 전화였다. 오랫동안 투병을 해오던 아내가 갑자기 더 아파 한림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상태가 심상치 않단다. 의사가 권해서 계속 진료를 받던 서울 강남 삼성병원으로 급히 출발하려는데, 구급차가 없었다. 그의 승용차로 출발한다고 했다. 보고하듯 내게 전화를 건 것은 무척 당황스러워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 같았다. 그의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왔다. 최선의 판단인 것 같다고 응원해주었다.


한 시간 남짓 후 그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 운전 중에 느낌이 이상해 조수석의 아내를 보니, 아내의 호흡이 없는 것 같았다. 흔들어 불러도 아내가 눈을 안 뜬다고 했다. 119구급차로 연락은 되었지만, 도로가 너무 막혀 못 오고 있다면서 울먹였다. 전화가 끊겼다.


나쁜 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초조히 서성이고 있는데
, 한참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삼성병원까지는 못 가고 근처 구리시 한양대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했지만, 심정지로 사망진단을 받고 말았다.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서 주선해준 차에 싣고, 춘천으로 되돌아온다면서 울었다. 그의 울음을 한참 들었다.


당장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 장례식장에 서둘러 가보니, 망연자실한 그가 혼자 장례 절차를 밟고 있었다. 얼마 후 외동딸과 사위가 도착하고, 두 친구가 황급히 와주었다. 가까운 인척이 먼 곳인데도 서둘러 당도했다. 사람들의 지혜가 모이니, 모든 장례 절차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중이었지만 친척과 친구들과 지인들이 많이 찾아와 진심으로 문상을 해주었다.


장례 후에도 그의 절친들이 우산처럼 그의 슬픔의 비를 막아주려고 애를 썼다
. 참으로 난감할 때 그는 도움을 받을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사회관계망 속에 인생의 의지처로 단단한 삶의 난간들을 촘촘히 세워 놓고 있었다.


친구들이 많다고 자랑하는 부잣집 아들이 있었다
. 아버지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아들 등에 지우고,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처럼 가장했다. 친구들의 집을 집집이 찾았지만, 아들을 숨겨 주려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아들의 아버지가 돼지를 지고 찾아간 첫 친구는 선뜻 그를 숨겨 주었다. 인생의 진정한 의지처가 아들은 없고, 아버지는 있었다. 청구야담 속 일화다.


우리는 의지가 되는
삶의 난간을 모두가 원한다. 난간은 층계나 다리의 가장자리에 일정한 높이로 세운 구조물로, 혹시 사람이 아래로 떨어지려 할 때 지켜주는 보호대이다. 좁은 폭의 높고 긴 다리에 난간이 없다면, 심리적으로 무서워 대부분 건너지 못하게 된다. 인생의 길에서 어쩌다 만나게 되는 다리도 그러할 것이다.


당신은 어려울 때 기댈 사람이 있습니까
? 국가 행복 지수를 조사하는 이 첫 질문에 우리나라는 OECD에 속한 국가 중에서 긍정 응답률이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고 한다. 가족이 포함되었는데도 그렇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친교를 평상시 소홀히 하여 결국
나 홀로 왕따가 된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좋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나 혼자 살 수 있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렇지 못하다. 험난한 인생의 다리에서 난간이 되어 줄 사람을 찾지만, 쉽게 찾아지지도 않는다.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 주는 노력과 세월이 아주 오래 걸리기 때문이리라. 아기가 성인이 되기까지 사랑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부모같이 서로 간에 보시(報施)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테가 많을수록 나무가 견고해지듯이
, 의지할 수 있는 삶의 난간의 강도도 시간에 비례한다. 이기적인 삶만 살아오다가, 어려울 때 기댈 곳 없는 그런 신세가 되지 않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은퇴 후 선후배가 함께하는 친목 모임도 있고, 학교 동문 친구들의 모임도 많다. 나는 그런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차곡차곡 쌓은 정만큼 서로의 난간이 되어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 더운 날 산골 집 뒤에 흐르는 개울에 발 담그고, 소주 한잔 들다 내 생각이 났다면서. 아내가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임을 알기에 위로의 전화를 준 것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세상 명예의 일을 다 접고, 산속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분이다. 방문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나도 좋아하는 시로 답해주었다. 정말 열흘 안으로 산밭의 옥수수가 여물 테니, 집사람과 함께 꼭 다녀가라고 당부했다. 내 힘든 처지를 늘 헤아려 주고, 나의 상담을 당신의 일처럼 고민해주던 선배는 오랜 세월 동안 내 삶의 난간 같은 분이다. 살면서 상호 간의 의지처가 되려면,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함은 만고의 진리다. 형님 같은 선배님을 조만간에 찾아가 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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